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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양현慶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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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법정지명


경양현이 있었던 지역은 1914년 평택군 경양면 지역으로 추정된다.33)



[경양현 지역으로 추정되는 현재 지명]


구분 현재 법정 지명
팽성읍 도두리, 신대리, 본정리, 노양리 일원


행정구역의 변천


경양현은 고려 때 아주牙州의 하양창河陽倉이었고34) 조선시대 1396년(태조 5) 직산현에 속했다. 조선후기 경양면이 됐고 어은리魚隱里·본언리本堰里·인처리仁處里·어촌리魚村里 등이 있었다. 후에 평택군 경양면이 됐다.35)



주석

33) 1914년 당시 경양면은 평택군에 속했으므로 평택군 지역에 기록해야 하나 갑오개혁 이후에 이루어진 일이고 역사적으로 거의 대부분 직산현과 관련 있기 때문에 직산 지역에 포함시켰다.
34) 진위현 사람인 영동정(令同正) 이장대(李將大)와 직장동정(直長同正) 이당필(李唐必)이 국가에 사단이 있는 틈을 타서 같은 현의 사람인 별장동정(別將同正) 김예(金禮) 등과 더불어 반란을 꾀했다. 그는 무리를 불러 모아 현령의 부(符)와 인(印)을 겁탈하고 창고를 열어 촌락에 나누어주니 굶주린 백성들이 많이 따랐다. 이웃고을에 통지해 정국병마사(靖國兵馬使)로 스스로 칭하고 의병이라 불렀다. 행군이 종덕(宗德)·하양(河陽) 두 창고에 이르러 곡식을 풀어서 군사를 먹이고 제멋대로 가지고 가서 장차 광주(廣州)를 침범하려 했다(『高麗史節要』15, 고종 4년 정월). 이 기사에 의하면 진위현 반란군이 행군한 곳이 하양창과 종덕창이었으므로 적어도 이 시기까지는 경양현으로 승격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35) 시기는 1895년(고종 32)이나 1896년의 지방 제도 개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