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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공군기지 Osan AB(K-55)


송탄에 있는 오산 공군기지(Osan Air Base)는 1951년 2월 7일 ‘총검의 고지 전투(Battle of Bayonet Hill)’가 일어났던 곳이다. 그해 11월 미국은 한국에 전투지원단을 지원하는 공군부대 주둔지로 평택군 진위천 들판에 인접한 서탄면 야리·적봉리·신야리 일대를 지정했다. 그들은 이곳을 ‘오산리(Osan-Ni)’199)라 했고 기지 이름을 ‘오산리 AB(Osan-Ni AB)’로 명했다.


1952년 초 한국과 미국은 K-55 미공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이 일대에 거주하였던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그해 7월부터 미 공병대와 한국인 노무자들을 투입해 두 달 반 만에 2,740m의 비행장 활주로를 완성했다. 같은 해 11월 18일 전투폭격비행단과 그 비행단의 F-51 전투비행중대를 비롯한 두개 중대가 배치되고 그 부대는 이후 F-86으로 전환됐다. 1952년 11월 본격적으로 미공군기지가 운용되면서 서탄면 적봉리에 있던 부대정문을 현재 위치인 송탄면 신장동으로 옮겼다. 1953년 6월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그해 10월 한국과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미군이 계속 한국에 주둔하도록 하는 법적근거를 마련했다. 1954년 1월 ‘항공전술본부’가 재배치됨으로써 한국 내 미국 공군의 주된 허브기지가 됐다. 이때부터 부대 정문을 중심으로 미군들을 상대로 한 상점과 위락시설이 밀집한 기지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56년 9월 공식 명칭을 ‘오산리 AB(Osan-Ni AB)’에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오산AB(Osan AB)’로 변경했다. 이때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송탄의 경제는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1968년 1·21 사태 이틀 만인 1월 23일, 북한은 원산 앞 바다 40km 떨어진 공해상에서 미국 ‘푸에블로’함을 공격하고 선원들을 납치했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전쟁의 위기에 휩싸였고 미국은 1,000여 명의 병력과 650만 파운드의 군수물자를 오산기지에 증강 배치했다. 같은 해 11월 23일 선원들이 풀려나면서 위기는 넘겼으나 이 사건으로 미군은 기지시설 확장과 전투단 배치를 서둘렀다. 더불어 지역 경기 또한 전후 최고조의 호황을 맞았다.


1971년 11월 군산비행장에 배치됐던 3rd전술전투비행단의 36th 전술전투부대가 오산베이스로 옮겨왔고 1974년 51비행단으로 재편됐다. 1988년 F-16이 배치되면서 격납고와 군수품 저장소 및 숙소 등이 새롭게 건설됐다. 1993년 10월 1일 제51전투비행단으로 개편됐다. 북한의 도발과 베트남전, 걸프전등 국내외 분쟁으로 미군이 증원하고 감축함에 따라 송탄경제도 변화를 겪었다.


현재 기지에는 7,000명(군인 5,000명)이 주둔하고 있고 태평양공군 산하의 7공군사령부가 있으며 7공군 주력부대인 51전투비행단과 제5정찰단, 제31특수작전항공단, 제303정보단, 제631공수기동지원단, 제33구조단 등이 배치돼 있다. 주로 전투기종인 F-16, F-15와 폭격기 A-10기가 주종을 이루며 수송기 C-130과 정보수집 정찰기 U-2기와 소형 정찰기, 헬기 및 국내외 기지를 운행하는 민항기들이 하루 평균 54∼123회 운행하고 있다.



건설중인 K-55 미공군기지 전경(1952)

| 건설중인 K-55 미공군기지 전경(1952) |



초창기 K-55 미공군기지전경(1952)

| 초창기 K-55 미공군기지전경(1952) |



외출중인 미군들과 부대정문 앞 거리(1960)

| 외출중인 미군들과 부대정문 앞 거리(1960) |



신장 쇼핑몰(2010)

| 신장 쇼핑몰(2010) |



캠프 험프리스 Camp Humphreys(K-6)


팽성읍 안정리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는 해방 전 일본해군병참기로 사용됐던 곳이다. 1942년 일본 해군시설대가 한국인들을 강제징용해 길이 1,700m, 폭 50m의 활주로를 건설했다. 그러나 비행장은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채 종전됐고 해방과 더불어 미군이 접수했다. 미군은 기지 경비만 했을 뿐 군사적으로는 사용하지 않았고 1949년 미군 철수 후 한국 해병대가 일시 주둔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5일 한국정부는 한반도 방위 목적으로 안정리 기지를 미군에게 공여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1952년 미해군비행단과 제6147전술통제단의 임무수행을 위해 기존 활주로를 2,400m로 새롭게 확장하고 기지명을 K-6라 명명했다. 휴전 후 미육군 대구지원부대 일부가 주둔하면서 일곱집매를 중심으로 기지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62년 기지명을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로 바꿨는데 이는 1961년 오산 상공에서 헬기사고로 숨진 미육군 기술장교 ‘벤저민 K 험프리즈’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이 기지는 미8군(EUSA)과 서울지역사령부, 제7병참사령부 부속기지로 해외에 주둔한 미육군의 비행기지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비중 있는 곳이다. 1964년 독립된 지역사령부로 개편됐다. 1974년 19지원여단의 발족으로 미육군 수비대로 지정됐고 1985년에는 전시지원 조직으로 개편돼 23지원단으로 지정됐다. 1996년 6월 17일 미육군 제3지역지원사령부로 출범했고 7월 24일 아파치(AH-64) 실전배치와 더불어 미육군 제6항공전투부대를 운용하게 됐다. 현재 기지에는 5,000여 명(군인3,500명)이 주둔하고 있고 정보수집용 정찰기와 블랙호크(Black Hawk), 시누크(Shinook), 아파치(AH-64)및 코브라(Cobra)등 다양한 헬리콥터와 중·소형의 수송기 및 경비행기가 하루 평균 30∼85회 운항하고 있다.



1952년

| 1952년 9월 24일 항공촬영한 K-6 미군기지 모습 |



우마차로 드럼통을 나르는 모습(1952)

| 우마차로 드럼통을 나르는 모습(1952) |



K-6 미군기지건설 모습(1952)

| K-6 미군기지건설 모습(1952) |



안정리 쇼핑몰(2012)

| 안정리 쇼핑몰(2012) |



주석

199) 당시 이 지역은 평택군 송탄면·서탄면 지역이었다. ‘오산리’라고 한 것은 기지 건설을 위해 가까운 오산역을 통해 군수물자가 하역 수송되면서 발음하기 편한 오산으로 했다는 주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