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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농악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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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두머리인 상쇠의 필요에 의해 인근 시·군에서 농악 한 자락한다는 사람들을 묶어 급조한 농악팀으로 두레굿이나 걸립굿을 펼치곤 했다. 때문에 농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팔려간다”12)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평택농악을 거쳐 간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평택농악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평택지방은 넓은 소사벌을 배경으로 농업이 발달했고, 두레에 의한 마을단위의 풍물도 발달했다. 한편, 웃다리 지역에서는 보다 전문적인 풍물패가 형성돼 나중에는 풍물 자체를 업으로 삼는 직업적인 유랑 연희패로 변모했다.
이런 배경에서 형성된 평택농악은 두 가지 성격이 있다. 하나는 최은창이 평생 거주해 온 평궁리 일대나 넓게는 평택지역에서 전승돼 오던 마을 두레패 성격의 농악이며, 또 하나는 최은창이 성인이 된 이후 다른 지역을 유랑하면서 활동하던 전문연희패 성격의 농악이다.

평택농악이 두레패 성격에만 머물렀다면 웃다리 지역을 포괄하는 농악으로서의 대표성을 가지지 못했고, 전문연희패 성격만 가지고 있었다면 농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두레농악의 대동적 신명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평택농악은 두레패의 전통, 웃다리 지역 전체를 넘나들던 전문연희패의 전통이 함께 있는 복합적인 특성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평택농악은 마을 두레패 성격보다는 전문연희패 성격이 강하다. 이는 평택농악 예능보유자였던 최은창이 주로 전문연희패에서 활동했다는 점과 평택농악의 구성방식 그리고 구성원의 주요 인맥에서도 나타난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평택농악보존회는 자체 노력에 의한 토지 확보와 정부·평택군의 지원으로 팽성읍 평궁2길 15에 평택농악전수회관을 건립하고 꾸준한 강습과 공연활동으로 평택농악의 전승보존과 전수활동에 힘쓰고 있다. 지방자치제도 이후 최근에는 행정적 지원이 확대돼 평택농악의 전통 보존과 발전적 계승을 위한 전승활동을 안정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평택농악전수회관

| 평택농악전수회관 |



웃다리 평택농악은 가락의 종류가 많지 않은 반면 변주가 다양하다. 또한 가락이 빠르고힘이 있으며 맺고 끊음이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독특한 가락으로는 칠채와 잦은삼채라 불리는 쩍쩍이가 있다. 판굿은 굿패들이 여러 가지 놀이와 진풀이를 순서대로 짜서 갖은 기예를 보여주기 위해 벌이는 풍물놀이다.
웃다리 판굿은 보통 45명 정도로 이루어지는데, 농기와 영기를 앞세우고 호적수가 따르며 그 뒤로 쇠-징-장고-북-법고-무동 등이 이어진다.
평택농악의 판굿은 진풀이가 다양하고 화려하며 생동감이 넘친다.
당산벌림 대형과 무동놀이가 가장 큰 특징인데 특히 무동놀이에서 보여주는 던질사위·앞뒤곤두·만경창파돛대사위·동거리와 곡마단은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평택농악만의 자랑거리다.


평택농악 예운관

| 평택농악 예운관 |



지금은 명맥이 끊어졌지만 여느 농악에서 할 수 없는 평택농악만의 전설이 있다. 무동 네 명이 한 줄로 올라서서 4층탑을 쌓는‘회초리 사무동’과 곡마단에 앞뒤로 두 명의 무동이 더 올라서는 ‘칠무동’이 있었다 한다.
기예 면에서 어떤 농악도 따라오지 못하는 압도적인 기술과 진용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주석

12) 평택농악보존회장 김용래의 증언, 2003년, 박성복 녹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