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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농악의 명인들(최은창·이돌천·김용래·이민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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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농악의 체계화에 앞장선 최은창崔殷昌은 1914년 지금의 팽성읍 원정리에서 태어나 출생 직후 평궁리로 이주해 살아왔다. 최은창은 마을 둥기래패 상쇠에게서 꽹과리를 배워 16세 때 두레패의 꽹과리를 쳤고, 26세 때 이원보 상쇠에게서 장구와 꽹과리를 배우고 이원보 농악단의 끝쇠를 쳤다. 40세 때 남운룡악단南雲龍樂團에 들어가 장구로 시작해 나중에는 부쇠를 쳤다. 48세 때 절걸립패 상쇠로 나서서 북한산 태고사·인천 연화사 등 절을 중수할 때 절걸립패를 이끌고 시주를 걷었다.20)



| 평택농악 예능보유자 최은창, 이돌천, 김용래 |



이후 ‘민속극회 남사당’에서 활동하던 최은창은 1980년 ‘경기농악’이라는 이름으로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한 것이 계기가 돼 1985년 평택농악 상쇠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평택농악을 이끌게 됐다. 20여년 간 보존회장을 맡으며 평택농악 체계화에 노력하다 2002년 작고했다.
최은창과 함께 평택농악을 이끌어 온 이돌천李乭川은 이천 장호원에서 태어나 10세 때 천안으로 이주해 16세 때 마을 상쇠에게서 쇠를 배웠고 17세 때 충북 출신의 박지삼에게 법 고를 배웠다. 18세 때 남운룡南雲龍에게 법고를 배워 남운룡농악단의 법고수로 활동했다.
그 뒤 평택농악과 천안농악에 적을 두었으며, 1980년 평택농악을 공식 결성하는데 합류해 1985년 법고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아 활동해오다 1994년 작고했다.21)
현재 평택농악보존회장을 맡고 있는 김용래金容來는 천안에서 태어나 13살 때 용곡마을 두레패에서 무동으로 농악에 입문했다. 16세부터 대전 송순갑 행중과 안성 남운형 행중에 서 활동하다 18세 때 상모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의 스승이 바로 평택농악의 명인 이돌천이다. 또 천안에서 난장굿을 할 때는 최은창의 꽹과리 장단에 맞춰 상모를 돌렸으며, ‘남사당’에 가입해 활동하다 1982년 평택농악에 들어왔다. 2008년 평택농악 법고 예능보유자로 지정됐고 팽성읍 평궁리 평택농악전수회관 인근에 살고 있다.
이민조李敏祚는 포승읍 방림리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곳에서 산다. 16세 때 마을에서 법고를 배웠고 18세 때 이원보에게 꽹과리를 배웠다. 1980년대 평택농악단 일원으로 활동하다 탈퇴해 포승지역 농악대 상쇠로 활동해왔다. 2006년 평택민요 발굴·보존을 주도해 2009년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8호 평택민요의 농요부문 예능보유자로 지정돼 활동해오고 있다. 이밖에도 평택농악의 초창기 단원으로 방오봉·김육동·유준·황홍엽·이성호·이경일등이 있으며, 안성남사당보존회장인 김기복도 오랜 기간 평택농악보존회에서 활동해왔다.
평택농악보존회는 현재 국가에서 지정한 평택농악예능보유자인 김용래 보존회장을 중심으로 43명의 단원이 보존 및 전승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평택농악보존회 예능보유자 및 전수교육조교 지정 현황] 22)


이름나이지정 종목지정 내용 및 연도
김용래 73 법고·무동 예능보유자(2000년 지정)
김육동 85 법고·북 전수교육조교(2001년 지정)
황홍엽 73 호적 전수교육조교(2001년 지정)
조한숙 53 상쇠 전수교육조교(2009년 지정)
김종수 42 법고·무동 전수교육조교(2009년 지정)
김양원 58 태평소·장고 전수교육조교(2012년 지정)
황영길 46 쇠·장고·법고 전수교육조교(2012년 지정)


주석

20) 국립문화재연구소, 『평택농악』, 1997, p.184.
21) 국립문화재연구소, 『평택농악』, 1997, p.190.
22) 2012년 12월 31일 현재,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