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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세기柳世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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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졸 년 : 1893∼1983년

활동분야 : 기악가·경찰공무원 / 전국 5대 남사당 놀이패인 진위패 육성

출 생 지 : 진위면 봉남길 46


유세기는 집안에서 전국 5대 사당패인 진위패를 육성했고 농악·시조 등에 조예가 깊었으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택 진위면에 거주했다. 저서로는 『원형시조창법』이 있다.
유세기의 부친은 19세기 중반 진위현 관청에 소속된 아전衙前으로 솥을 만들어 파는 솥전을 대대적으로 운영하면서 사람을 뽑을 때 농악에 소질 있는 사람들을 전국에서 골라 뽑아 솥의 수요가 적은 시기에는 농악을 연마시켰다. 1867년 고종 4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고 경복궁 건축 위안공연을 했다. 이때 대원군으로부터 ‘진위군대도방권농지기’라는 농기都大房旗와 3색의 어깨띠를 하사받았고 당시 상쇠 김덕일은 ‘오위장五衛將’의 벼슬을 받았다. 진위농악은 경기농악을 대표했으며 전국적으로도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초에 남사당패 놀이를 전국에서 금지하고 있었는데 유세기가 안성경찰서에 재직하면서 유일하게 안성경찰서만이 사당패놀이를 허가해줘 전국의 사당패들이 평택·안성지역으로 집중 이주하게 됐다. 이때 평택과 안성은 진위와 청룡사를 본거지로 사당패의 중심지가 됐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평택농악이 무동놀이 등 사당패의 연희성과 걸립굿 등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은 남사당 진위패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유세기는 시조에도 매우 능했다. 1952년 그가 지은 등간본謄刊本인 『원형시조창법』은 시조 노래를 부르는 방법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한국음악학의 기반 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한국음악사 학술자료로도 매우 중요하다.
유세기는 초대 한국농악협회장을 맡아 매년 전국농악경연대회를 개최하는 등 일제강점기에 쇠퇴한 우리 농악을 재건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 유세기가 쓴 『원형시조창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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