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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평택의 전통 예인>기악 예인>최은창崔殷昌
■ 최은창崔殷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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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졸 년 : 1914∼2002년

활동분야 : 기악가 /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평택농악 예능보유자·평택농악 상쇠

출 생 지 : 팽성읍 원정리


최은창崔殷昌은 1914년 팽성읍 원정리에서 대대로 농사를 짓던 부친 최상순 씨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출생 직후 평택농악의 발원지인 팽성읍 평궁리로 이주해 살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특출하게 귀가 밝았던 그는 스스로 예능적 기질을 키워나갔다. 그는 두레풍물을 보고 듣는 재미에 푹 빠져 무엇이든 손에 잡히면 두드려 집안의 그릇이 남아나지 않았고, 진흙으로 꽹과리를 만들어 두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평궁리 둥기래패 상쇠에게서 꽹과리를 배워 16세 때 두레패의 꽹과리를 쳤고, 26세 때에는 이원보 상쇠에게서 장구와 꽹과리를 배웠으며, 이원보농악단의 끝쇠를 쳤다. 성인이 되면서 마을단위를 벗어나 촌걸립을 하는 전문연희패에 가담했고 절걸립패에 몸을 담았다가 독립해 직접 절걸립 행중을 꾸려 활동했다. 장고잽이로, 비나리꾼으로, 쇠꾼으로 이름을 날렸다. 농사철에는 평궁리에 들어와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가을걷이가 끝난 뒤에는 걸립패로 나서는 생활을 반복했다. 40세 때에는 남운룡악단南雲龍樂團에 들어가 장구와 부쇠를 쳤다. 48세 때에는 절걸립패 상쇠로 나서서 북한산 태고사와 인천 연화사 등 수 많은 절의 중수에 절걸립패를 이끌고 시주를 걷었다. 이후 민속극회 남사당에서 활동하던 최은창은 1980년 평택군의 요청으로 농악단을 꾸려 ‘경기농악’이라는 이름으로 제주도에서 열린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했다. 이를 계기로 1985년 평택농악 상쇠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 11-2호 평택농악을 이끌게 됐고 20여 년 가까이 평택농악보존회장으로 평택농악을 체계 화시키는데 공헌해오다 2002년 작고했다.



 

| 평택농악 예능보유자 최은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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