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기의 처 전의이씨 효부정문 > 유적과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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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한기의 처 전의이씨 효부정문

본문


한양조씨 조한기의 처 전의이씨 효부 정려문

(漢陽趙氏 趙漢起妻 全義李氏 孝婦 旌閭門)



소 재 지 : 월곡동 58-1



•현황 : 조한기 처 전의이씨 효부정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지붕은 합각기와 지붕이다. 정문 안에 ‘효행기’가 있다.


•행적 : 전의이씨(全義李氏)는 1660년 지금의 충남 아산에서 이지방(李志芳)의 맏딸로 태어나, 1676년 한양조씨(漢陽趙氏) 17세손 장남(良節公派/漢豊君派/嘉山公派)인 성균진사(成均進士) 조한기(趙漢起, 字 한숙漢叔)와 결혼한 후 남편을 공경하고 시부모님을 정성껏 모시며 가문의 법도를 충실히 따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숙종16년(1690년) 29세 나이로 남편이 사망하자 정성껏 장사 지내고 홀로 시부모님을 지성으로 모셨다. 

남편을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시부모님을 정성껏 모시던 중 시아버지 충의위(忠義衛) 조준도(趙遵道, 字 택중擇中)가 갑자기 병환이 들어 칠성제단에 기원하며 정성껏 간병하였으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식음을 전폐하게 되었다. 어느날 시아버지가 한겨울에 죽순(竹筍)이나 칡뿌리가 먹고 싶다고 하자 앞산에서 칡뿌리를 구해 올리고 또 꿩 고기를 원하시어 기도를 드리던 중 꿩 한마리가 치마폭으로 날아 들어와 그것을 잡아 드렸다. 그 후 그녀의 지극한 정성으로 인해 시아버지는 병이 완쾌되었다. 1700년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녀의 효행을 유림(儒林)들이 나라에 추천하니 영조 29년(1729년) 효부 정려문(孝婦 旌閭門)을 명정(銘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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