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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지역은 근대 이전부터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근대 이전의 교통은 육로교통, 해로海路 및 수로水路 교통이 있었고 통신시설로는 봉수烽燧가 있었다. 조선시대 평택지역에는 제6대로인 삼남대로와 제8대로인 충청수영로가 지나갔고, 아산만과 안성천, 진위천 유역에는 많은 나루와 포구가 있어 해로 및 수로 교통로를 형성했다.
통신시설로는 전라도 순천의 방답진에서 서울 남산인 한양 목멱산으로 연결된 제5거의 직봉直烽이 팽성읍 신대리 망해산봉수와 포승읍 원정리 괴태길곶봉수를 거쳐 한양으로 올라갔다.1)
수로와 해로교통에서는 안성천과 진위천, 황구지천, 발안천 유역, 그리고 아산만 연안이 중요했다. 안성천 유역의 주요 나루와 포구로는 평택시 군문동의 군물포(군문포), 통복동과 신대동의 신덕포·화포·삽교포, 팽성읍 석봉리의 원봉나루·석봉나루, 팽성읍 대추리의 곤지진, 노양리의 경양포(계양), 현덕면 신왕리의 신흥포, 대안4리 구진, 권관리 계두진이 있었다.2) 또 진위천 유역에는 고덕면 동고리의 이포진, 궁리의 다라고비진, 해창리의 해창진, 동청리의 동청포, 서탄면 황구지리의 항곶포, 진위면 갈곶리의 갈곶포, 청북면 토진리의 토진土津나루가 있었다. 발안천 유역에는 청북면 삼계리의 옹포, 현곡리의 신포, 포승 읍 홍원리의 자오포, 호구포가 대표적이고, 아산만 연안에는 포승읍 만호리의 대진, 신영리의 신전포, 원정리의 한나루, 현덕면 장수리의 석화진이 있었다. 팽성읍 노양리의 경양 포, 고덕면 해창리의 해창포, 청북면 삼계리의 옹포는 직산현과 평택현(경양포)3), 진위현(해창포)4), 양성현(옹포)5)의 세곡을 모아 운송하는 해창海倉이었다. 포승읍 만호리의 대진 大津은 삼국시대에는 대당교역의 중심나루였으며, 근대전후에는 충청도 내포지역과 서평택의 상권을 연결하는 해상교통 및 교역로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평택지역의 도로교통은 근대 이후 크게 변화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철도역을 중심으로 신작로가 가설되고, 철도역 주변에 근대도시와 시장이 신설됐다. 원평동의 평택역, 서정동의 서정리역은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설치된 철도역이었다. 철도가 개통되면서 평택역 앞으로는 국도 1호선과 국도 45호선이 건설됐다. 일제 말에 서평택지역을 남북으로 오가는 국도 39호선이 건설됐다.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가 진위면 동천리에서 부터 용이동과 안성시 공도면 경계에 건설됐고 2001년 12월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됐다. 2002년 12월 평택~삼척고속도로로 서평택~서안성 구간이 개통됐고 2013년 3월 평택~인천을 연결하는 제2서해안고속도로 평택~시흥 구간이 개통됐다. 2009년 10월 평택~서수원 간 고속도로가 개통됐다.
근대 이후 수로나 해로교통은 크게 쇠퇴했다. 더구나 1974년 5월 아산만방조제가 준공되면서부터는 내륙 수로교통이 완전히 차단되면서 옛 경관이 사라졌다. 1986년 12월 평택항이 국제무역항으로 개항하고 2013년 현재 62선석으로 확장돼 해로교통 및 무역 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1999년에는 인천에 주둔했던 해군 제2함대사령부가 포승읍 원정리로 이전했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의 이전으로 조선전기 수군첨사 및 만호가 주둔하던 역사성을 잇게 됐다.



| 안성천 수로에 속한 오성면 당거리 뱃터(2012) |


| 국도1호선 지제동 부근(2008) |


주석

1) 김정호, 『역주 대동지지-직산현, 목천현, 천안군 편』, 성환문화원, 2006. 『양성군지』, 1899.
2) 평택문화원, 『향토사료집』 제1집, 1991.
3) 김정호, 『역주 대동지지-직산현, 목천현, 천안군 편』, 성환문화원, 2006.
4) 『진위읍 지도 성책』, 1899.
5) 『양성군지』 창고(倉庫) 조, 1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