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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과 유물>교통 · 통신유적>육로교통의 역사>고려시대 육로교통
■ 고려시대 육로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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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육로교통은 후삼국을 거치며 역할이 줄었고, 고려 전기에는 개경을 중심으로 새 로운 교통, 통신망이 형성됐다. 이 과정에서 삼남대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려 태조가 천안을 후백제 정복의 전진기지로 삼고 천안도독부를 설치한 것도 천안이 삼남三南으로 내 려가는 교통의 요충이었기 때문이다.9)
고려는 건국 뒤에도 삼남대로의 정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현종 때 성환읍 대홍리에 설립된 봉선 홍경사의 창건과정을 보면 이와 같은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현종(1009~1031) 은 ‘이곳이 갈래 길의 요충要衝인데다가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무성한 갈대 숲이 들판에 가득해서 행인들이 약탈하는 강도强盜를 자주 만나기 때문에 절을 창건해 강도들을 제도하고 교통의 안전을 꾀하라10)… ’는 선친先親11)의 유지를 받들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홍경사 일대는 행인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大路였는데 갈대숲이 무성하고 강도들의 출몰이 빈번해 안전한 교통망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홍경사에는 광연통화원이라는 역원驛院도 함께 설치됐다. 고려시대의 절이 국가의 통치·행정조직의 연결과 교통망 확보를 목적으로 설립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고려후기 무신정권기에는 각 지역에서 민란이 자주 발생했다. 1176년(고려 명종 6) 공주 명학소에서 발생한 망이·망소이의 난이 있었다. 공주에서 봉기한 망이·망소이는 최씨 무신정권이 있는 개경을 향해 북상하다가 홍경사를 점령하고 절을 불태운 뒤 절의 주지에게 자신들의 뜻을 담은 편지를 써서 개경으로 올려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12) 망이·망소이가 홍경사까지 북상한 경로는 공주-차령-천안-직산-홍경사(광연통화원)였을 것이다. 이 사실은 고려후기에도 삼남대로가 고려 지방통치의 중요한 교통로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 홍경원(광연통화원)이 있었던 천안시 성환읍 봉선 홍경사터 |


| 삼남대로 배다리 일대(2007) |



한국도로사에 따르면 홍경사 광연통화원에서 평택북부의 끝 지점인 청호역까지 연결된 도로는 조선시대와 같은 홍경사-소사원-갈원-봉남리 코스가 아니라, 홍경사 광연통화원-소사원-가천역(안성시 원곡면)-청호역 노선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노선은 개경에서 수원을 거쳐 천안-공주-부여로 이어졌던 충청주도13)로서 전공주도와 함께 조선시대 삼남대로, 제주로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더구나 안성천만 무사히 건너면 하천의 영향을 받지 않고도 무 봉산과 천덕산 사이를 통과해 수원방면으로 나갈 수 있어 교통의 요로要路로 이용됐다.



| 삼남대로 칠원동 부근 |



주석

9) 『고려사』 권56 지리지, 「천안부」
10) 『신증동국여지승람』 직산현 조.
11) 고려 현종의 선친은 나중에 안종으로 받들어진 왕욱이다.
12) 『고려사』 세가, 명종 6년 1월.
13) 한국도로공사, 『한국 도로사』,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