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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정리(멍거니)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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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구석기·신석기·청동기·조선


•위치 : 포승읍 원정리 산109-430(아산만과 남양만이 갈라지는 돌출부 야산 정상 레이더 기지가 있는 남쪽
        경사면에 위치)


•현황 :원정리 유적은 아산국가공단 조성 사업의 일환인 (주)기호물류 평택터미널 건설공사로 인해 1994년 아주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이어 1995년 11월부터 약 7개월에 걸쳐 아주대학교 박물관과 서울대학교 조사단이 A지구와 B지구로 나누어 공동으로 발굴하게 됐다.
패총은 해발 49m인 야산의 남사면 골짜기 사이에 형성돼 있으며, 해발 26m 정도에서 시작되는 구릉 상부의 패각층은 매우 얇게 남아있으나 구릉 아래로 내려오면서 부터는 2m 이상까지 두터워진다. 패각분포 범위는 무려 1,000여 평에 이르는데 후대에 많은 범위에 걸쳐 교란된 상태다.
A지구 일부 지점에서 고토양층이 확인됐고 많지는 않지만 구석기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후기 구석기시대에는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공간으로 자리 잡았을 것 으로 보인다. 고토양층 상부에서는 신석기시대 생활면으로 추정되는 흑갈색 점토층이 부분적으로 잔존하고 있다. 또 A지구에서는 교란되지 않은 신석기시대 패각층이 부분적으로 얇게 분포하고 있지만 상부 패층은 잘게 부스러진 패각으로 형성됐고 재퇴적 또는 교란이 극심해 층위에 따른 출토 유물의 맥락을 밝히기가 어려울 정도다.
파쇄패각층에서 즐문토기, 점토대토기, 타날문토기편 및 조선시대 자기편, 기와편 등이 일정한 층별 순서 없이 출토됐다.
B지구의 패층은 대부분 재퇴적 결과 교란된 상태였다. 조선시대 집 자리가 발견됐는데 집자리 바닥을 고르는 과정에서 패각과 점토면을 깔아 다진 것이 확인돼 교란의 정도가 심했음을 알 수 있다.
유적지 앞 해안은 모래톱과 자갈을 포함한 갯벌과 암초들이 펼쳐져 있으며 조수 간만의 차이가 약 6∼7m에 이르고 간조 시 100m 정도의 간석지가 드러난다. 이러한 해안은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풍부한 어패류를 제공했다. 유적지 층위의 교란이 심했다는 것은 풍부한 해산물을 구하기 쉬워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비교적 좋은 생활공간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현재 유적지 야산 위에는 레이더 기지가 있으며 남쪽 아래로는 (주)기호물류가 자리하고 있어 유적지의 원래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수습 유물 : 구석기시대(밀개, 긁개, 톱니날 등의 석영제 석기), 신석기시대(금강식 토기의 구연부, 석착, 석도),
        청동기시대(점토대 토기의 구연부편·저부편, 타제의 괭이머리, 마제석부, 석촉, 돌낫 파편, 숫돌, 타날문토기편)



| 원정리(멍거니) 유적 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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