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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전기 육로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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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한양천도 후 중앙집권과 국방강화를 위해 전국의 교통·통신망을 정비했다. 태종과 세종 때는 도로 건설과 관리, 도로 폭에 대해서까지 규정을 법제화했고, 성종 때는 경국대전을 편찬해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평택지역의 간선도로들도 조선 초 한양천도와 함께 재정비됐다. 조선시대 평택지역의 간선도로들은 삼남대로 경기남부구간과 마찬가지로14) 하천 연안의 충적지 혹은 구릉 말단부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이 과정에서 고려 후기의 소사원-가천역-청호역 노선은 역로驛路로 정비됐고, 소사원-갈원-대백치-봉남리 노선이 새롭게 신설됐다.
조선 전기 평택지역의 교통로를 연구할 수 있는 사료로는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유일하다. 이 사료에 15세기 후반 평택지역에는 수원부에 청호역, 진위현에 장호원, 이방원, 백현원, 갈원, 양성현에 소초원 같은 역원이 있었다고 한다.15) 청호역은 오산시 원동 오산I.C 옆의 역말에 있었으며, 장호원은 평택시 진위면 신리, 이방원은 진위면 갈곶2리, 백현원은 송북동 동막부근, 갈원은 칠원1동 주막거리, 소초원은 소사동에 있었던 소사원으로 판단된다. 내용을 토대로 15세기 후반의 삼남대로 평택구간을 복원하면 다음과 같다.



오산시 원동 역말(청호역) → 평택시 진위면 갈곶2리(이방원) → 진위면 견산리 산직촌 → 진위면 신리
(장호원) → 독곡동 오리골 → 송북동 동막(백현원) → 대백치(큰 흰치고개) → 칠원1동(갈원) → 소사1동
(소초원) → 천안시 성환읍 가룡리 → 성환읍 대홍리(홍경원)




| 복원 된 삼남길(평택구간도) |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