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지역의 나루·포구유적 > 유적과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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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과 유물>교통 · 통신유적>조선시대 수로 및 해로 교통유적>평택지역의 나루·포구유적
■ 평택지역의 나루·포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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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海運 및 수운水運은 인마人馬와 조세租稅 그리고 물화物貨의 운송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산만 유역에 수로水路, 해로海路교통이 발달한 것은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통일을 전후해서는 포승읍 만호리의 대진大津이 대당교역의 중심으로 역할 했고,40) 근대 전후에도 충청도 내포지역을 연결하는 교통 및 교역창구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의 지리지地理誌, 읍지邑誌에는 안성천, 진위천 변의 여러 포구유적이 소개됐다.
16세기에 제작된 『신증동국여지승람』41) 진위현 조에는 나루와 포구가 나와 있지 않고 평택현만 오을미곶포吾乙未串浦·시포市浦·신덕포新德浦·군물진이 소개됐다. 또 직산현 조에는 경양포가, 양성현 조에는 청북면 삼계리의 옹포가 보인다. 조선후기 대동법이 실시되고 경강상인들이 조운활동과 선상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평택지역에도 나루와 포구들이 만들어졌다. 1899년 『진위군읍지』에 군문포·황구포·고잔포·해창포가 수록됐으며, 18∼19 세기의 고지도에 기존의 나루, 포구 외에 다라고비진·동청포·항곶포(황구포)가 표시돼 있다. 또 18세기 초에 편찬된 『팽성지』에는 곤지나루·신덕포·삽교포·통복개·시포 등 5개의 나루와 포구가 보인다. 1808년(순조 8)에 편찬된 『만기요람』42)에는 만호리의 대진大津을 소개하고 있다. 대진은 옛 기록에 솔개바위나루 또는 한진으로 불렸다.











+ 안성천의 나루와 포구

+ 진위천의 나루와 포구

+ 아산만 연안과 발안천 수로의 포구

주석

40) 1872년 영의정 이유원의 주도로 제작된 「조선방역지도」의 여백에 ‘大津三國時百濟於槥郡之可里渚東置水軍倉,              新羅平百濟置館積穀號稤館, 唐之使价商賈皆就館羅人朝貢亦由此因名大津’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41) 민족문화추진위원회 편, 『신증동국여지승람』, 1984, 수원부, 진위현, 평택현, 직산현, 양성현 편
42) 민족문화추진회, 『만기요람』,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