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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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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한金世澣의 묘


소 재 지 : 지산동 소골



•현황 :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한지澣之, 소골에 정착한 광산 김씨 문중의 파조이다. 조선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첨정, 부정을 거치면서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1531년 파 직됐다가 1538년 복직했다. 명종 때 경기수사, 1557년에 충청병마절도사였다. 묘가 서 울 신림동에 있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소골로 이전했다. 묘역에 이전할 때 가져온 문인 석·석등·망주석 등이 있다.



소흡 일가의 묘역


소 재 지 : 지산동 소골



•현황 : 지산동 소골 동편 부락산 북편 산자락에 진주소씨 묘역이 위치하고 있고 모두 6 기의 묘가 있다. 아래로부터 소흡·소수연蘇壽延(증 공조참판)·소경원蘇慶元(진용교위· 훈련원참군)·소응사蘇應詞(여력교위·부사과)·소이蘇怡·소순蘇淳 등의 묘가 있다. 장 명등·문인석·동자석 등이 있으며 묘갈들은 마모가 심해 판독이 불가하다.



수성최씨 묘역


소 재 지 : 독곡동 오좌마을 산44



•현황 : 묘역에 최경숙·최희효·최자반·최충국외 13기의 묘가 있다. 최경숙은 문신으로 사옹원판관을 역임했고 묘는 전주이씨와 쌍분이다. 묘 상단에 묘표와 상석, 하단에는 향로석과 문인석 1쌍이 있다.
최희효崔希孝(1509∼1589)는 자반子泮(오좌 마을의 개척자)의 아들로 1531년 무과에 급제하고 광주판관·선천판관·예빈시부정·전라병사·해주목사·충청좌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했다. 묘에 묘갈·문인석 등이 있다.



최유림崔有臨과 최윤신崔潤身의 묘


소 재 지 : 지산동 소골



•현황 : 묘역에 최유림을 비롯해 4기의 묘가 있다. 위로부터 진산소씨-최유림-최윤신-수성최씨 묘가 배치돼 있다. 최유림(1426∼1471)은 무신으로 수성최씨 안양공파의 시조다. 본관은 수성이며 자는 자앙子昻이다. 1450년(세종 32) 무과에 급제해 고성현령을 지냈으며, 1467년 ‘이시애의 난’ 때 비장으로 종군해 공을 세워 정충출기포의적개공신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 3등에 봉해졌다. 1468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부임해 재직하던 중 병을 얻어 독곡동으로 낙향해 우거했다. 후에 병조판서에 추증됐고 시호는 안양安讓이다. 묘역에 문인석·장명등·상석·묘표가 있다. 묘표는 최근에 건립했다.
최윤신은 최유림의 아들로 조선 성종 때 인물이다. 호는 극기제克己薺라 했다. 진사과에 참방한 뒤 벼슬에 뜻이 없어 후학을 양성하고 심신 수양에 뜻을 두어 향리에서 명유와 교류하며 지냈으나 1483년(성종 14) 나라에 추천돼 음관蔭官으로 사헌부 집의가 됐다. 벼슬을 그만둔 뒤 낙향해 성둔암·안사제 등의 유학자들과 교우하며 지냈고 진위현의 관사를 건립하는데 공을 세웠다. 증직은 통정대부 이조참의이며 부인은 숙부인 광주 안씨, 묘는 지산동 소골에 있다. 묘역에 문인석·상석· 묘표가 있다. 묘표는 최근에 건립한 것이다.




(임원택_진위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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