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좌 신도비李鼎佐 神道碑 > 유적과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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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좌 신도비李鼎佐 神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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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진위면 가곡리 신가곡



이정좌(1663~1726)는 이세필의 아들이며 좌의 정을 지냈던 이태좌의 동생이다. 신도비는 1829년 (순조 29)에 세워졌으며, 비석의 높이 175cm, 넓이 77.5cm, 두께 37.5cm이다. 이정좌 신도비는 그의 아들이 이세필의 비문을 썼던 이덕수에게 부탁해 찬하게 됐다. 좌의정 서명균徐命均이 쓰고 성균관대사성 조명교曺命敎가 전액篆額했다. 이덕수는 비문에서 ‘이정좌를 어려서부터 형으로 보아왔고 존경했기 때문에 사양할 수 없어 비문을 짓는다’는 심경을 밝히고 있다.
비문에 의하면 이정좌는 과거를 위한 학업에 힘썼으나 끝내 합격하지 못하고 1702년(숙종 28) 사직서참봉社稷署參奉으로 벼슬을 시작해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 좌수운판관左水運判官이 됐다. 1726년(영조 2) 6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정좌는 벼슬이 높지 않았으나 그의 형 태좌가 좌의정을 지냈고 아버지는 영의정으로 추증된 이세필이니 가문의 배경이 만만치 않았다. 손자 이경양李敬養의 출사로 이조참의로 추증되고 증손 이석규李錫奎가 다시 숭질崇秩에 올라 이조참찬에 추증됐다.
현재의 신도비의 앞부분은 이덕수가 썼으나, 뒷부분은 이정좌의 증손이며 이조판서를 지낸 이석규李錫奎가 추가로 기록했다. 이석규가 추가로 기록한 부분은 이정좌의 손자로부터 5대손이면서 고종 때 영의정까지 올랐던 이유원까지 후손의 계보를 밝힌 내용이다.



| 이정좌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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