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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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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왕리99)


조선후기 수원부 광덕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왕골과 마두리, 와촌을 통합하여 신왕리라고 했다. 신왕리는 신왕1리 신흥포(계두포)를 중심으로 안성천 하류의 어업과 수로교통이 발달했던 마을이다. 해방 전후만 해도 신흥포에서 나룻배를 타면 팽성읍 경양포나 아산의 백석포로 건너갈 수 있었다. 신흥포는 신왕리에서 삼정리, 대반리를 거쳐 수원과 한양까지 육로교통과도 연결됐다. 그래서 근대 전후에는 충청도 사람들이 나룻배를 타고 신흥포에서 내려 이 길을 따라 한양을 오갔다.


마두1리는 마두(말머리)와 와촌(기왕골)이다. 1리의 마을규모는 30호가 조금 안 된다. 성씨는 경주 이씨, 교통 인씨가 많다. 마두1리는 말머리·마산·새터말·기왓말·속말과 같은 작은 마을로 나눠졌다. 주민들은 신흥포를 광덕나루터라고 부른다. 1974년까지 나루터에는 뱃사공도 있었고 주막도 있었다. 마두1리 마을의 주산업은 어업이었고 일부는 농사도 지었다. 주민들은 중선배와 작은배(전마선)을 타고 안강망·건강망·삼중망으로 새우·거물치·동어·뱅어·숭어·준치·삼치를 잡았다. 9월~10월에는 민물장어와 참게도 많이 잡혔다. 봄과 가을 뱃터에는 간이주막이 성업했다. 주막에는 기생도 있었고 단오에는 그네뛰기도 했다. 신왕1리 주민들은 아산만방조제가 준공된 뒤 농업의 비중이 높아졌고 일부는 민물고기 양식업을 하고 있지만 수입은 예전만 못하다.


신왕2리는 신왕골이다. 신왕골의 규모는 32호로 마두마을보다 조금 크다. 이 마을은 본래 배씨가 개척하였는데 450여 년 전 달성서씨와 순흥안씨가 이주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신왕골은 마두에 비해 농업인구가 많았고 어업은 농업을 보완하는 수단이었다. 주민들은 모내기가 시작되기 전인 음력 4월에 어업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중선 1척과 작은 배 서너척으로 멀리는 어청도까지, 작은 배는 아산만 일대에서 강다리·거물치·뱅어·새우·조기·숭어·거물치·준치· 황새기 등을 잡았다. 잡은 고기는 농촌마을에 나눠준 뒤 가을에 곡식으로 받았다. 어업이 끝나면 모내기를 했다. 현재 신왕리는 변화에 직면했다. 평택시에서는 평택호관광단지를 신왕리 일대까지 확대하려고 하며, 옛 나루에서 팽성읍 노양리까지 교량이 건설될 예정이다.



신흥포가 있었던 포구마을 신왕1리 마두(2013)

| 신흥포가 있었던 포구마을 신왕1리 마두(2013) |



주석

99) 이태수(84세), 안원환(77세), 이상근(64세), 김인태(73세), 2013년 3월 신왕1리 경로당에서 인터뷰
    서찬규(75세), 안선규(71세), 서찬석(76세), 2005년 2월 신왕2리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