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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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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황산리104)


조선후기 직산현 안중면지역으로 느늘미 또는 황산이라고 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황산당, 안외면 창촌倉村, 광덕면 소외리 각 일부, 가사면 안중리를 통합하여 황산리라고 했다. 황산이라는 지명은 황산3리 느늘미에서 왔다.


황산리는 조선시대 직산현 안중창이 있던 마을이다. 이 마을 일대는 바닷물이 들어왔고 곶이 발달했다. 조창은 도대리로 넘어간 창말과 1914년 행정구역 통합 때 황산리로 편입된 창촌, 대반3리 창말에 있었다. 조창이 발달하면서 황산1리 상안중에는 직산장이라는 장시場市도 형성됐다. 직산장은 조선말 안중읍 안중리로 옮겨갔다. 일설에는 황산리의 토호였던 동래 정씨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황산1리, 2리는 상안중과 하안중이다. 마을의 규모는 30호에서 40호 내외였는데 근래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안중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안중창에서 유래되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해방 전후에는 기산리 옥녀봉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고 황산리 앞에는 큰 수로가 형성되어서 하안중 남서쪽 ‘하틀’까지 새우젓배, 소금배가 닿았다고 한다. 배가 닿으면 주민들은 새우젓과 곡물을 바꿔왔다. 상안중마을은 예로부터 동래정씨 가문이 큰 세력을 이루었다. 동래정씨는 1764년(영조 40) 서울 용산에서 이거移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착 후 넉넉한 경제기반과 가문의 위세로 안중일대의 토호로 자리 잡았다.



조선시대 안중창이 있었던 황산2리 하안중(2005)

| 조선시대 안중창이 있었던 황산2리 하안중(2005) |



주석

104) 이재헌(70세), 김향자(63세) 외, 2006년 2월 황산2리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