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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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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당동獐堂洞109)


장당동은 서정동, 율북리 등과 함께 조선시대 양성현 소고니면 지역이었다. 1914년 진위군 송탄면에 편입됐다. 장당동은 1번 국도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광천(너브내)·장당(노루댕이)·효명중·고등학교·홈플러스·장당지방산업단지가 자리 잡고 있으며, 우측으로는 장당지구택지개발로 조성된 공동주택단지와 장당중학교가 있다. 장당지방산업단지 퓨리나사료가 있는 곳은 배가 닿았던 곳이라고 해서 ‘돛대배기’다.


장당동지역이 개발되기 전 자연마을은 서정천과 경부선철로 서쪽에 자리 잡고 있던 광천·광귀·장좌울·노루댕이·방아다리뿐이었다. ‘장당’이라는 지명은 노루댕이에서 왔다. 그래서 ‘원장당’이라고도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을 한자이름으로 바꾸면서 노루 장에 ‘댕이’와 비슷한 ‘당’자를 붙여 장당동이라고 했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노루댕이는 2호만 살아서 ‘두집메’라고 불렸다. 방아다리는 효명중고등학교 주변마을이다. 소규모의 마을이 한국전쟁 뒤 규모가 커졌다. 장당마을 남쪽에 있는 장좌울은 장당마을 옆이라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이곳에는 중국 화교출신의 도일경 씨 집만 있었다. 두 마을은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광천(너브내)과 같은 마을이었다. 이장도 광천마을 이장이 장당과 장좌울을 관할했다. 1960년대 전라도지역 이주민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커졌다.


광천(너브내)은 장당동에서 가장 큰 자연마을이다. 서정천 넓은 냇가에 자리 잡아 ‘너브내’라 불리다가 ‘광천廣川’이라고 고쳐 부르게 됐다. 너브내는 17개 성씨가 혼재된 각성바지마을이다. 마을형성시기도 가늠할 수 없다. 해방 후에는 외지인들의 유입이 많았고, 1976년 마을 근처 송탄산업단지 안에 삼화제관이 들어서면서 공장직원들이 많이 거주할 때는 140세대가 넘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었다. 1960년대 초 귀농정착사업을 할 때 광천마을 뒤 도톰안골에 귀농정착촌을 형성했다. 귀농정착촌은 ‘광귀’라고 불렀다. 1967년 한뉴목장이 설립될 때는 많은 땅이 수용됐다. 장당동의 자연마을은 고덕국제신도시 개발 지역에 포함돼 2013년 초 폐동됐다.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건설로 폐동된 장당동 광천마을(2011)

|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건설로 폐동된 장당동 광천마을(2011) |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이 건설되고 있는 광천마을 일대(2013)

|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이 건설되고 있는 광천마을 일대(2013) |



주석

109) 이장우(73세), 최광길(72세), 이광규(75세), 이태우(75세), 2011년 1월 10일 광천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