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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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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동은 조선시대 일탄면이었고, 갑오개혁 후에는 탄현면의 중심이었다. 탄현炭峴은 ‘숯고개’의 한자 지명이다. 숯고개는 신장육교 사거리에서 국민은행 방향으로 내려가는 고개를 말한다. 숯고개는 송탄 일대에서 생산된 숯이 유통되던 통로였다. 근대전후 숯고개 옆 좌동마을에는 주막이 있었다. 숯고개주막 또는 쑥고개주막이라고 불렀던 ‘지현주막’이다. 주막이름으로 사용된 ‘지현芝峴’은 ‘지산芝山’으로도 쓰일 수 있어 근대 전후에는 숯고개가 ‘지현’ 또는 ‘지뫼고개’로도 불렸다.


신장동에 미군기지가 주둔하기 전 지산동에는 좌동·우곡·건지미와 같은 자연마을과 숯고개 일대에 두 세집이 살고 있었다.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120)에도 일탄면에는 우곡 리·건지산리·오좌동리·좌동리·여후동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오좌동 리는 행정구역 상 송북동에 속한 독곡동 오좌동 마을이고 건지미·우곡도 송북동에 속하 므로 좌동마을만이 지산동에 속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산동이라는 지명은 지현芝峴에서 왔을 것으로 보인다. 근대 이전에도 숯고개는 지산동 일대의 상징적인 지명이었기 때문이다. 지산동은 1914년 마산면 동막리·일탄면 우곡리· 좌동·지산리 일부를 통합해 만들어졌다.121)인구가 증가하고 1981년 송탄시가 승격되면서 좌동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행정구역으로 변했다.


이 지역은 부락산, 태봉산, 투구봉, 등실봉등 낮은 언덕 사이에 소골천·좌동천·목천 (나무내)이 흐르며 계곡 사이에 소골들·황부들이 형성돼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하고 마을 이 형성됐다. 1911년 『조선지지자료』에는 신장동에는 미수보가 있었고, 독곡동에는 삼형제 지라는 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했다. 지산천의 범람이 잦았고 땅이 건조하고 물이 부족해 생산력은 높지 않았다.


지산동의 면적은 0.61㎢이며 평택시 전체면적의 0.35%이다. 인구는 4,508세대 10,407 명이며, 남녀 비율은 남자 5,321명, 여자 5,086명으로 비슷하다. 행정구역은 15개 통, 84 개 반이며 규모는 다른 행정동에 비해 작은 편이다. 공공시설은 지산동주민센터와 평택시 립지산초록도서관이 있다. 2006년 11월 개관한 평택시립지산초록도서관은 경기도립도서 관평택분관을 제외하고는 공공도서관이 없던 송탄지역에 건립된 문화시설이다. 교육시설 은 1994년에 개교한 지산초등학교가 있다. 의료기관 20개소, 좌동감리교회를 비롯해 많은 종교시설이 있다.



주석

120) 『호구총수』, 1789.
121)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 중앙시장,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