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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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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곡牛谷123)


송북동에는 송천·건지·우곡·동막·오좌동·오리골·신흥 등 7개 자연마을이 있다. 우곡은 부락산 북사면에 위치한 최소 5백 년 이상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다. 갑오개혁(1895) 이후 일탄면 우곡리에 속했다가 1914년 지산리에 통합됐다. 우곡은 양지편·가운 데말·시루터와 같은 자연마을이 있다. 중심마을은 가운데말이며, 시루터는 서쪽 등성이 너머이고 농협창고 뒤쪽은 양지편이다. 본래 평택지역의 대표가문이었던 진주 소씨 참판공파가 세거해 ‘소골’이라고 하다가 조선후기 ‘우곡牛谷’이라고 고쳤다. 진주 소씨는 본래 진주와 하동을 근거지로 세거하다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당하자 사패지가 있던 진위현 여좌동(도일동)으로 이거했다. 대제학을 지낸 소수천과 참판을 지낸 소수연 때 크게 성장했으며 소수연이 송북동 우곡에 자리를 잡으면서 부락산 일대에 세력을 갖게 됐다.


1724년(영조 4)에 있었던 무신 난(이인좌의 난)에 적극 가담하면서 가문이 멸문되다시피 했다.


조선 전기 소골은 마을 옆으로 삼남대로가 지나고 소골천이 흘렀으며, 계곡 사이로 문전옥답이 발달해 경제적으로 넉넉했다. 주산업은 농업이며 대부분 벼농사와 밭농사를 짓는다. 마을 규모는 일제강점기에 12호였다가 해방 후 30호로 늘었고, 현재는 외지인들이 정착하면서 약 45∼50호 내외(마을 서쪽 우곡전원주택단지는 제외)로 증가했다. 광산김씨 문정공 후 문민공파가 많다. 우곡전원주택은 2000년경 조성했고 건너편 동안마을은 미군기지 확장으로 인해 2008년을 전후해 신장동 구장터 사람들이 집단 이주하며 조성한 마을이다.



송북동의 중심마을 우곡

| 송북동의 중심마을 우곡 |



주석

123) 김갑순(85세), 정복순(83세), 2012년 1월 28일 욱고마을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