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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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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막東幕124)


동막은 갑오개혁(1895) 후 일탄면에 속했고 1914년 우곡과 함께 지산동에 편제됐다. 동막은 근대 이후에 형성된 마을이다. 1911년 『조선지지자료』에도, 1914년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에도 지명이 나타나지 않는다. 동막이라는 지명은 덕암산과 태봉산이 동쪽에 둘러서 있어 유래됐다.


조선후기에는 서쪽으로 삼남대로가 지났고 염봉재 중턱에는 백현원이라는 역원이 있었으며 마을 입구에는 동막점이라는 주막이 있었다. 마을은 동막주막 주변에 민 가가 들어서면서 형성됐을 것으로 보인다. 동막은 아래뜸·동뜸·서뜸으로 구분된다. 성씨는 경주 이씨가 많았고 인동 장씨가 뒤를 잇는다. 해방 직후에는 18호였고 지금은 40호이며 동북쪽의 전원주택이 완공되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전체 18호일 때는 경주 이씨가 절반을 차지했다. 경제적으로도 지주여서 마을의 운영을 좌우했다. 농업인구가 대부분이다.


동막은 물이 부족한 마을이었다. 가뭄도 심해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짓기가 힘들었다. 관정을 박아도 물이 잘 나오지 않았고 공동우물이 2개가 있었지만 식수도 부족했다. 개울물을 먹기도 하고 우곡에서 길어오기도 했는데 1980년대 초 동막저수지가 정비되면서 문제가 해결됐다. 동막마을의 생활환경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영향이다. 마을개선사업과 도로 넓히기 사업으로 냇가 제방을 다시 쌓고 도로가 확장돼 우마차와 자동차가 드나들게 됐다. 지금은 전원주택들이 들어서서 마을경관이 많이 변했다.



동쪽 막다른 곳에 마을이 형성된 동막

| 동쪽 막다른 곳에 마을이 형성된 동막 |



주석

124) 김현길(80세), 2011년 7월 29일 동막마을 자택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