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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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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택동平澤洞


근대전후에는 진위현 병파면 통복리에 속했다. 1905년 1월 1일 경부선 평택역이 설치되면서 평택리가 됐다. 일제강점기에도 역의 위치를 철로 동편으로 옮기자는 논란이 있었고 일제 말 구획정리를 한 뒤 불하하기도 했는데 실현되지는 않았다. 한국전쟁으로 원평동이 파괴되면서 주요 관공서와 시장이 이전하고 신도시개발이 진행돼 현재와 같이 평택지역의 정 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됐다.


한국전쟁 뒤 평택동의 도시구획은 철도역을 중심으로 부채살 모양의 5개도로를 건설한 것이 특징이었다. 철도역은 1953년경 이전했다. 비전동과 평택동 경계에 평택경찰서(1953년 12월 26일)와 평택군청(1954년 2월 6일)이 이전했고 맞은편에 평택읍사무소(현. 환타지아빌딩)가 자리를 잡았다. 초기 도시구획에서 복지관(현.문예회관)은 읍사무소 좌측에 있었고, 우측에는 소방서가 있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은 새시장 삼성빌딩 터에 있었다. 평택동은 평택역과 평택군청 사이, 평택역과 평택경찰서 사이도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특히 평택역-군청 사이의 도로 서쪽은 평택보건소, 상가와 술집, 평택극장 등이 밀집해 ‘명동골목’으로 불렸다. 또 평택역 서쪽도로 좌측골목의 평택3리지역은 사창가가 발달해 일반적으로 ‘3리(일명 쌈니)’하면 사창가를 연상하게 했다. 새시장은 1963년 평택읍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통복시장을 이전하기 위해 시장 조성공사를 시 작했다가 중단한 데서 유래됐다. 이렇게 조성된 신도시에는 확대된 행정구역명이 부여됐다. 1986년 이전을 기준으로 할 때 평택1리는 새시장, 평택2리는 명동골목(구시장), 평택역 앞 일대는 평택3리로 편제됐다. 1986년 평택시로 승격되면서 기존의 행정구역이 1리는1·8·14·17통으로, 평택2리는 2·3·4·5통으로, 평택3리는 6·7통으로 편제됐다.


평택동은 1990년대를 전후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1992년 평택시청(구 평택읍사무소)이 비전동에 새 청사를 준공해 이전했고, 복지관도 비전동에 남부문예회관이 건축되면서 문을 닫았다. 시외버스터미널은 평택역 동편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2000년 이후에는 명동골목이 쇠퇴하고 평택역-경찰서 구간 좌우지역이 상가와 식당, 쇼핑의 중심으로 탈바꿈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2000년대 후반에는 구 평택시의 심장부 역할을 했던 평택극장과 중앙극장이 문을 닫았고, 옛 평택시청 터에 건축된 환타지아 빌딩과 2009년 준공된 평택민자역사 안에 CGV같은 복합영화관이 들어섰으며 평택역이 애경산업의 투자에 의해 민자역사로 신축돼 AK프라자가 들어선 것도 큰 변화다. 남서울병원이 문을 닫고 주변 일대가 쇼핑과 오락의 중심으로 탈바꿈했으며 박애병원 뒤편 새시장골목은 젊은이들의 ‘먹자골목’으로 바뀌었다.



평택동의 옛 중심거리 명동골목(2013)

| 평택동의 옛 중심거리 명동골목(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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