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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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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합정동蛤井洞


합정동은 구시가지의 동남쪽에 위치했다. 1983년 이전 평택고등학교 아래 배미 마을은 평택군과 안성군의 경계였고, 현재 동일공고와 굿모닝병원 주변은 대부분 과수원이었다. 소사동과 용이동은 안성시에 속했다. 그래서 합정동 동쪽 경계를 ‘군계郡界’라고 불렀다. 합정蛤井이라는 지명은 ‘조개터’에서 왔다.127) 조개터 마을 앞은 조선시대 백랑천이 흘렀고 조금 더 남쪽으로는 소사천과 만났다. 민물과 조수가 드나드는 하천에는 어패류가 풍부했다. 합정동 부근에서는 말조개와 부전조개(재첩의 경기도식 표현)가 많았고 메기·가물치도 잡혔다. 어패류가 풍부한 지역에 빈농들이 몰려들어 마을이 되었다. 그렇게 형성된 마을이 조개터蛤井다. 조개터는 1789년 편찬된 『호구총수』에도 보이므로 형성시기가 200년 이상이다.


합정동의 자연마을은 조개터·배미·통미·창말·됏박산이다. 됏박산은 1989년 10월 합정주공아파트(3단지)가 준공되면서 사라졌고, 창말은 1946년 물난리 이후 일부가 남아 있다가 최근 배미지구개발로 폐동됐다. 합정동에는 1990년 전후부터 논밭이 메워지고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1989년 10월부터 통미 남서쪽에 건축된 합정주공아파트 1∼4단지, 1994년 8월에 입주한 한미아파트, 2004년 분양한 합정SK뷰 주상복합아파트, 1999년 8월부터 입주한 참이슬아파트, 2003년 8월 입주한 SK합정아파트가 있다. 이밖에 신안아파트, 성동아파트가 있지만 연립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0년 이후 재개발된 조개터 마을에도 많은 수의 연립주택과 상가들이 건축됐다.


합정동에는 관공서 및 공공시설이 많다. 1986년 신평동주민센터를 비롯해 조개터와 배미 사이에는 1979년 신축하고 2010년에 리모델링한 소사벌레포츠공원이 있다. 레포츠공원 동쪽에는 2001년 개관한 평택시청소년문화센터와 체육관, 수영장이 있다. 배미마을 뒤쪽에는 평택고등학교(1974년 3월 이전)와 평일초등학교(1982년 3월 개교), 합정주공아파트 근처에는 합정초등학교(1992년 3월 개교)가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굿모닝병원이 대표적이고, 소사벌레포츠공원 부근에는 1995년 개원한 성세병원이 있다. 또 성동초등학교 사거리에서 평택여중 사거리 사이에는 예일산부인과와 미즈산부인과, 정형외과 전문인 으랏차병원 등이 있다.


조개터 지역에는 2000년 이전까지 100여 호가 살았다. 삭녕최씨가 20호로 대성大姓을 이뤘다. 옛 마을은 가운데 도로를 중심으로 윗뜸과 아랫뜸으로 나눴다. 우물도 윗말과 아랫말에 각기 하나씩 있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다. 매봉산 동쪽 당재 부근에 당목이 있어 정월 대보름 전에 당제도 지냈고 두레패도 근동에서 알아주었다. 일제강점기부터 교육열이 뜨거워 1906년 동명의숙이 설립된 곳으로 근대교육에 목이 말라 머슴 살고받은 세경으로 야학을 설립했던 곳도 조개터였다. 현재 조개터는 2000년대 초부터 재개발되고 있어 주택과 빌라, 상가들이 뒤엉켜 있다. 인구도 늘었다. 하지만 주민공동체는 아직도 살아 있고 농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다.


통미는 주공3단지 북쪽 자연마을이다. 근대 이후 형성됐고 해방 전에는 약 50호가 모여 살았다. 주민들은 막노동을 하거나 기차역에서 철도보수나 화물하역 작업을 하는 잡역부들이 많았다. 됏박산은 합정동주공아파트 남쪽에 있었다. 해발 15미터 내외로 천지개벽때 떠내려 왔다는 전설이 있었다. 됏박산 꼭대기에는 주민들이 당목堂木으로 섬기는 정자나무와 당집이 있었고, 산 아래에 당집을 중심으로 10여 호가 있었지만 합정주공아파트 공사로 폐동됐다.


배미128)는 롯데마트와 평택고등학교가 있는 자연마을이다. 1980년대 이전에는 55호가 거주했지만 지금은 다세대 건물이 늘어나 300세대가 넘는다. 경주김씨가 많았지만 지금은 각성바지마을로 변했다. 마을 앞에 나루터가 있고 배가 닿아서 배미라고 불렀고 신기新基 또는 야미夜味라고도 부른다. 마을 앞 합정감리교회 부근(합정동 48번지 일대)에는 창말도 있었다. 창말에는 풍년나무가 있어 나무가 풍성하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었다. 조선시대 양성현의 사창司倉 육고六庫가 있었다.



합정주공아파트에서 바라 본 합정동 일대(2009)

| 합정주공아파트에서 바라 본 합정동 일대(2009) |



주석

127) 양용길(74세), 최승희(87세), 최규수(77세), 이민수(73세), 2010년 1월 26일 조개터 경로당에서 인터뷰
128) 홍성수(73세, 2010년 합정동 배미마을 노인회장). 유천동에 거주하다가 1946년 병술년 장마 때 배미로 이거
        송태용(79세), 2010년 배미마을 경로당에서 인터뷰
        이준이(70세), 2010년 배미마을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