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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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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군문동軍門洞


군문동은 조선시대 진위군 병파면에 속했다가 1914년 일제가 간포리間浦里를 합쳐 진위군 병남면 군문리가 됐다. 1986년 평택시가 승격되면서 군문동으로 개편돼 평택동, 신대동과 함께 원평동 관할이 됐다.


군문동은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평택현의 군물진軍勿津이었다.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19세기에 편찬된 『평택현읍지邑誌』에 군물진의 기록이 보인다. 군물진이 ‘군문포’로 바뀐 것은 청일전쟁 영향이다. 청일전쟁 당시 아산만으로 들어온 청군淸軍은 밀물을 이용해 아산의 백석포와 평택의 군물포로 입항했는데 이때 군물포가 군문포軍門浦로 바뀌었다. 철도개통 이전만 해도 군문포는 경기도에서 충청도로 건너가는 충청대로의 관문이었다. 포구에는 나룻배 외에도 아산만과 옹진군의 용유도 등지에서까지 새우젓배·굴배·소금배·과일배가 들어왔다.


군문포는 근대 이후 큰 변화를 겪었다. 1905년 1월 1일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군문포와 인접한 진위군 병남면 통복리에 ‘평택역’이 설치됐고 역을 중심으로 방사선 도로망이 구축됐다. 일제강점기 초에는 평택-둔포 간 도로와 연결되는 목교(평택교)를 놓았다. 목교木橋는 장마에 자주 유실됐다. 지역유지들이 나서서 기금을 모금하고 지방관청에 지원금을 요청해 새 다리 가설을 추진했다. 1937년 12월, 경기도로부터 공사비 7만 6천 원을 지원받아 콘크리트 다리가 완공됐다. 평택교는 해방 후 군문교로 바뀌었고 근래에 4차선으로 확장돼 사용되고 있다. 1997년 군문주공아파트가 입주하면서 두 개의 마을로 늘어났고 1999년 군문초등학교가 설립됐다.



군문포 포구마을 군문1동(2013)

| 군문포 포구마을 군문1동(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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