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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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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월곡동月谷洞140)


월곡동의 우리말 이름은 ‘달구리’ 또는 ‘월구리’다. 월구리에는 정월 대보름 달맞이望月를 하던 ‘망월대望月臺’가 있었다. 월곡동은 월구리와 관동官洞으로 나뉜다. 망월대는 월구리(1동)와 관동(2동) 사이의 야트막한 구릉이다. 월곡1동 월구리는 해방 전후에는 42호 내외였고 지금은 50여 호이며, 월곡2동 관동은 15호 남짓이다. 관동은 귀한 사람이 많이 산다고 해서 귀골(구굴, 귀곡), 새로 생겼다고 새터말이라고도 부른다. 월구리의 대성大姓은 김녕김씨고, 관동의 대성大姓은 한양조씨다. 관동에서 안산을 넘어 월구리 방향으로 내려오면 전의 이씨 정려각이 있다. 정려旌閭의 주인공은 조한기의 처인 전의이씨다.


관동마을에는 ‘관’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귀골도 그렇고 골밭(고을밭)·옥터골·향교골 (향골, 향각굴)·새터말과 같은 지명도 관과 관련된 지명이다. 기록이 없어 어느 시기에 고을의 읍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월곡동은 벼농사와 밭농사, 과수농사, 축산업이 고루 발달했다. 과수는 주로 배를 심는다. 배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후부터다. 일제강점기 죽백동의 일본인 농장이나 조선인 배 과수원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해방 후 자기 땅에도 재배를 시작했고, 20여 년 전부터는 야산이나 밭을 개간해 과수원으로 바꾸면서 지금처럼 많아졌다.



망월대가 있었던 월곡1동 월구리(2012)

| 망월대가 있었던 월곡1동 월구리(2012) |



주석

140) 월곡동 관동마을 조정희(2002년, 73세), 조OO(2012년, 78세), 월구리 전용래(2012년, 86세), 백오형(82세), 안병현(83세), 조성무(80세), 김진만(8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