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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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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사동素沙洞


소사동에는 원소사·서지골(쇠죽골)·솔밭말·자기촌(아랫말)과 같은 자연마을이 있다. 원소사마을은 조선시대 삼남대로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여서 소사원이 설치되고 소사장이 있었다. 원소사 마을은 20∼30호의 작은 마을이었다가 1990년대 초 비전지구 택지개발사업 당시 문화촌 주민들 일부가 마을 뒤쪽으로 집단 이주하면서 규모가 확대됐다. 소사素沙라는 지명은 ‘흰 모래밭’에서 왔다. 소사벌과 소사천 배후습지는 일제강점기만 해도 대부분 흰 모래밭이었고 황무지가 많았는데 이것이 지명으로 정착됐다. 소사장이 있던 시절에는 상공업 인구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 소사벌 일대에서 밭농사와 논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원소사마을의 상징은 대동법시행기념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0호)다. 대동법시행기념비는 조선 효종 때 김육이 호서지방에 대동법을 실시한 것에 감사해 충청도 백성들이 소사원 옆에 세웠던 것을 1970년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원소사 동쪽마을은 서지골이다. 서지골이라는 지명은 쇠죽골 또는 떼골에서 유래됐다. 서지골은 조선시대 양성현 백성들이 합정동 롯데마트 근처에 있었던 창말의 조창에 세곡을 싣고 가다가 쇠죽을 먹이던 마을이어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합정동에 있던 창말은 비교적 작은 마을이었지만 1946년 물난리를 겪은 후 많은 사람이 떠났고, 1990년대 이후 완전히 폐동됐다. 서지골은 전체 가호家戶가 60호가 넘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으며 1990년대로 들어오면서 직장을 다니거나 상공업에도 종사했다. 서지골은 현재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솔밭말 일대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송림松林이 울창했다. 조선시대 양성현 구룡동면의 사창육고가 있던 곳이다. 1911년 편찬된 조선지지자료에는 솔밭말·자기촌·동역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솔밭말과 아랫말로 나뉜다. 순수 자연마을이었던 이 지역에 동방학교가 들어오고 마을 안의 사찰이 확장되면서 경관이 크게 변했고, 주민들의 직업도 농업중심에서 회사원이나 자영업자로 바뀌고 있다.



삼남대로 소사원이 있었던 소사1동 원소사마을(2013)

| 삼남대로 소사원이 있었던 소사1동 원소사마을(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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