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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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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현리鶴峴里26)


학현리는 조선시대 수원도호부 오정면과 현암면, 포내면의 경계였다. 1914년 오정면 율리와 현암면 언성리 일부, 포내면 학현리를 통합해 진위군 오성면 학현리라고 했다.


학현이라는 지명은 학현2리 원학현의 자연지명인 ‘하오개’에서 왔다. 하오개는 학고개의 사투리이며 한자로 표기한 것이 ‘학현鶴峴’이다. 자연마을은 율리·원학현·북덕말이 있다.


학현1리는 큰 마을인 밤골(율리)·배미·한칫말·건너말로 구분된다. 율리는 본래 30~40호 규모의 마을이었는데, 7년 전 마을 동쪽으로 그린빌라 등 다세대주택이 들어서면서 현재는 170세대가 넘는다. 마을은 서쪽보다 동쪽 경계가 넓어서 마을규모는 2리와 3리보다 넓다. 동쪽에 경기도외국어연수원이 있으며 안중공원묘지도 가까이 있다.


학현2리는 원학현이다. 원학현은 학고개 또는 하오개라고도 부른다. 원학현은 해방 전까지만 해도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황새와 학이 날아들었다. 마을의 규모는 30호에 불과했지만 한국전쟁 뒤 연백피란민 10여 호가 정착한 이래 계속 증가해 지금은 60∼70호가 넘는다. 마을을 개척한 사람들은 창녕성씨지만 지금은 수가 많이 줄었고 함평이씨·박씨·이씨·엄씨가 대성大姓을 이루고 있다. 원학현은 성안말과 학고개(하오개)로 나뉜다. 성안말 서쪽 취수장 근처에는 성벽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성벽은 석정리 장성長城의 일부다. 성안말 앞쪽은 해방 전후만 해도 조수潮水가 밀려드는 바다와 갯벌이었다. ‘안논’, ‘바돈’, ‘시논’과 같은 지명은 간척의 흔적이다.


학현3리는 ‘북덕말’이며 ‘복덕말’이라고도 한다. 지명에서 ‘덕’은 언덕을 뜻하므로 ‘북쪽언덕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학현리에서 가장 나중에 형성됐다. 1917년 발행된『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에도 나오지 않는다. 신학현이라는 지명도 근대 이후 마을이 새로 형성됐기 때문에 유래됐다. 호戶는 30호 33세대다. 갯벌은 한국전쟁 뒤 원학현에 정착한 피란민들이 간척했다. 농업인구가 대부분이고 논농사 비율이 밭농사보다 20%쯤높다.


학현4리는 안중초등학교 북쪽 길 건너에서 새동네까지를 영역으로 한다. 안중시가지와 접하고 빌라와 아파트가 많아서 세대 수가 많다. 2013년 현재 300여 세대나 된다. 새동네는 1981년에 건립된 양주연립을 비롯해 광성빌라·거성빌라·광성아파트가 있으며 출장소 앞에 다인아파트가 있다. 주민들 가운데 농업인구는 15세대에 불과하다. 대부분 회사원인데 포승읍 원정리의 가스공사, 남양의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나 중소기업에 다닌다.



학현2리 원학현마을(2010)

| 학현2리 원학현마을(2010) |



주석

26) 김태규/금녕 김씨 종중회장. 2007년 가보호텔 커피숍에서 인터뷰
      문삼영(73세), 2007년 2월 집 앞에서 인터뷰
      이규환(74세), 학현3리. 2007년 2월 인터뷰
      김충규, 학현1리 이장. 2010년 1월 전화인터뷰
      엄광섭(62세), 학현2리 이장. 2010년 1월 전화인터뷰
      윤하식, 학현3리 이장, 2010년 1월 전화인터뷰
      김원철, 학현4리 이장, 2010년 1월 전화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