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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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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덕우리德佑里28)


덕우리는 고려시대 용성현 지역이 었고, 조선시대 수원부 청룡면이 됐다. 본래는 덕좌리, 덕우리로 부르다가 1914년 수촌리를 통합해 진위군 청북면 덕우리라 했다. 1986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고 1989년 안중면이 독립하면서 안중면 덕우리가 됐다. 두 마을 모두 약 3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전한다.


덕우1리의 인구는 해방 전후에는 70∼80호 내외 약 350여 명이 거주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노령화와 젊은 층의 도시이주 및 이농현상이 두드러지면서 현재는 65호 220명만이 거주한다. 덕우2리는 해방 전만해도 70호에 약 300여 명의 인구가 거주했으나 근래에는 인구가 감소해 현재 100여 명에 불과하다.


덕우1리는 약 400여 년 전 광산 김씨가 입향하면서 형성됐다고 전한다. 300여 년 전 전주이씨와 광주이씨, 김해김씨 등이 입향하면서 인구가 늘었고 마을규모도 확장됐다. 지리적으로 자미산·비파산·달보는 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식수가 넉넉하고 땔감을 구하기도 쉬웠으며, 수렁논이 많아서 벼농사에도 유리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성공회덕우리교회가 설립됐고 덕우리강습소가 세워져서 종교활동과 근대교육이 시작됐다.


덕우2리 수촌은 16세기 고령박씨가 입향하면서 개척됐고 고령신씨도 입향하면서 마을규모가 확대됐다. 해방 전후 만해도 마을의 경제력은 고령박씨가 주도했다. 1950년 이후 농지개혁으로 자영농이 성장했고, 1950∼60년대 옥길리-홍원리 일대의 간척과 1970년대 경지정리사업으로 경작지가 확대되면서 생산력이 크게 늘었다.



도로가 건설되기 전의 덕우리 수촌마을(2007)

| 도로가 건설되기 전의 덕우리 수촌마을(2007) |



안중읍에서 가장 오래된 덕우리 원덕우마을(2009)

| 안중읍에서 가장 오래된 덕우리 원덕우마을(2009) |



주석

28) 최기만(86세), 덕우1리. 2010년 1월 마을회관에서 인터뷰
      이종호(67세), 덕우1리. 2010년 1월 마을회관에서 인터뷰
      이용재(82세), 덕우1리. 2010년 1월 마을회관에서 인터뷰
      황규문(74세), 덕우2리 노인회장. 2010년 1월 마을회관에서 인터뷰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