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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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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금곡리金谷里32)


고려시대에는 용성현 지역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수원도호부 오정면에 속했다. 1914년 금곡·임촌·관두리·청룡면 강길리 일부를 통합해 금곡리라고했다. 1986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고 1989년 안중면이 독립하면서 안중면 금곡리가 됐다.


금곡리는 금곡1리 관두머리·금곡2리 송내·금곡3리 쇠누리·금곡4리 임동 등 모두 4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됐다. 금곡1리 관두머리는 형성시기가 약 250년쯤 된다. 마을은 200여 년 전 파평윤씨가 입향하면서 발전했고 풍양 조씨·전주 이씨 등이 들어오면서 규모가 커졌다. 근대 이전 관두머리는 수원군 오정면 관두리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제력이 향상돼 대지주도 있었고 금곡정미소가 있어서 금곡리 일대의 중심마을에 속했다. 금곡2리 송내는 자연지명으로 솔안말이다. 솔안말은 300여 년 전 풍양조씨가 입향하면서 개척됐고 전주이씨 의안대군파가 입향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됐다. 마을은 근대 이전에는 금곡3리에 속했다가 분동됐다. 금곡3리는 마을을 비보하는 청룡산과 통봉산이 와우형이라고 해서 쇠누리 또는 큰말이다. 500여 년 전 풍양조씨와 광주이씨가 개척했다. 지금도 광주이씨는 11호가 거주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농업인구가 많다. 금곡4리는 임동, 자연지명으로 숲말이다. 숲말은 예로 부터 울창한 숲과 경작지와 마을이 어우러져 사람이 살기 좋았다. 통봉산과 높은 절(고절산)이 마을을 에워쌌고 건너편에는 청룡산(촉농산)이 앞을 가려주었다. 숲말은 300년 이상 된 마을로 추정된다.



금곡리의 기원이 된 금곡3리 쇠누리(2010)

| 금곡리의 기원이 된 금곡3리 쇠누리(2010) |



주석

32) 조경묵(78세), 이덕휘(77세), 금곡2리 솔안말 거주, 2010년 1월 금곡 노인정에서 인터뷰
      손창식, 윤수한 외, 금곡1리 관두마을 거주. 2010년 1월 금곡 노인정 인터뷰
      이용장(77세), 이종태(64세), 이방헌(58세), 조강묵(71세), 금곡3리 거주. 2010년 2월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