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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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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대반리大盤里33)


대반리는 조선시대 수원도호부 오정면과 직산현 언리면 지역이었다. 1914년 대반촌·소반촌·용촌·신촌과 직산군 안중면의 송담리 일부를 통합해 대반리라 했다. 1986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고 1989년 안중면이 독립하면서 평택군 안중면 대반리가 됐다. 자연마을로는 소반촌(1리, 작은반바위)·대반촌(2리, 큰반바위)·창말(3리)·용머리(4리)·신촌(5리), 그리고 1995년 분동된 직산말(6리)이 있다. ‘대반’이라는 지명은 대반1리와 2리의 자연지명인 반바위(밤바위)에서 왔다. 반바위는 대반1리의 큰 너럭바위에서 비롯됐다고 전한다.


대반1리는 작은반바위다. 마을은 200여년 전 형성됐다. 대반1리는 1914년 대반촌·용촌·신촌과 함께 대반리에 속했다. 작은반바위는 지리적으로 현덕면 계두진이나 신왕나루에서 안중과 용성리를 거쳐 수원으로 갈 수 있는 옛길이 지나고, 구릉과 계곡사이로 논과 밭이 발달했다. 대반2리의 자연지명은 큰반바위다. 인구는 예나 지금이나 30호가 조금 넘는다. 마을은 400여 년 전 경주정씨가 처음 개척했다. 대반3리는 약 120여년 전에 형성됐다. 해방 전후만 해도 연안김씨가 대다수였다. ‘창말’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에 직산현의 조창漕倉이 있어 유래됐다. 대반4리는 용머리다. 용머리에는 청여울이라는 작은 마을도 있다. 이 마을은 본래 60호였는데 팽성-안중 간 도로가 개통되면서 지금은 90여 호 가까이 된다. 마을은 약 300여 년 전 정씨와 지씨가 개척했고, 지금은 경주김씨·김해김씨· 전주이씨가 대성大姓이다.


대반5리는 새터 또는 신촌이라고 부른다. 이 마을은 150년에서 200년 이상의 내력이 있다. 본래 세집 매, 네집 매라고 불렸다. 길음리와 대반리 경계에는 뱃터도 있었다. 뱃터 주민들 가운데는 어업을 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마을의 규모가 확대된 것은 갯벌이 간척되면서다. 대반6리는 직산말이다. 1895년 이전까지만 해도 충청도 직산현에 속했다. 마을은 해방 전까지만 해도 3호에 불과했고, 행정구역상으로도 대반4리 용머리에 속했다. 1960년대 초 제3공화국 정권이 길 위쪽에 반공포로 집단정착촌을 만들면서 마을규모가 확대됐으나 대부분 떠났고 경작지는 해천흥산(주)에서 운영하는 해천농장에 매매됐다가 1973년 평택농장에 매매됐다. 마을은 반공포로들 중 떠나지 않은 7호와 떠난 사람들의 집에 이주한 사람들을 포함해 27호로 형성됐다.



직산현 안중창이 있었던 대반3리 창말(2011)

| 직산현 안중창이 있었던 대반3리 창말(2011) |



주석

33) 한창규(90세), 대반1리 작은반바위, 2010년 1월 자택에서 인터뷰
      김영윤(74세), 안봉규(72세), 대반2리 큰반바위, 2010년 1월 마을 경로당에서 인터뷰
      김순덕(81세), 김구덕(88세), 정복희(81세), 임민수(70세), 2010년 1월 대반3리 창말 경로당에서 인터뷰
      윤재의(76세), 2005년 2월 대반4리 용머리 경로당에서 인터뷰
      김창득(93세), 2005년 2월 대반5리 용머리 경로당에서 인터뷰
      김문규(86세), 2010년 1월 대반6리 직산말 경로당에서 인터뷰
      김진성(61세), 백은태(63세), 2010년 1월 대반6리 직산말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