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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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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희곡리希谷里38)


조선후기 직산현 외야곶면 지역이다. 갑오개혁 뒤 수원군 현암면으로 통합됐다. 1914년 가장동 일부·승량동면 희곡·가장동 일부·안외면 송내·만호리 일부를 통합해 포승면 희곡리라고 했다. 희곡이라는 지명은 ‘희여울’에서 왔다. 희여울은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던 시기에 여울이 형성됐던 지역이다.


희곡리의 자연마을은 송내(1리)·원희곡(2리)·일자촌(3리)이다. 희곡리1리 송내는 승배산 아래에 자리 잡았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60호에 미치지 못했지만 근래 이주민들이 늘어나 80호가 넘는다. 함평이씨와 상주황씨가 많다. 승배산은 마을의 주산이다. 지명이 승배僧拜인 것은 옛날 현덕면 덕목리의 광덕절에서 스님이 찾아와 산에 절을 하면서 유래됐다고 한다. 근대 이전에는 송내 앞으로 바닷물이 들어왔다.


바닷물은 만호리와 송내를 지나 내기리 경찰지서 앞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밀물 때면 배들이 갯고랑을 따라 내기리 앞까지 올라가서 닻을 내렸다.


송내는 솔안말·안골·닭밭말로 구분된다. 본래는 솔안말과 안골이 마을을 양분했고, 송내라는 지명도 두 마을에서 한 글자씩 취한 것이지만 행정구역 조정으로 상만호에 속한 닭밭말이 희곡리에 편입되면서 마을 규모가 커졌다. 성뚝은 안말에서 잿말로 넘어 가는 고개다. 안골과 잿말 사이에는 서낭당이 있다. 서낭당은 댓굴재에도 있었다. 본래 갯벌이었다가 간척된 땅이 대부분이다. 간척은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크게 바꿔놓았지만 소득 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 지역은 전형적인 논농사지대다. 1974년 아산만방조제가 준공되기 전까지는 대부분 천수답이었다. 식수에도 염기가 많아 생활에 불편이 컸고 생산력도 매우 낮았다. 마을의 큰 변화는 아산만방조제에서 비롯하였고, 다음으로는 평택항과 포승국가공단순이다. 근래 주택과 인구가 증가하는 것도 이것들과 관련이 있다.


희곡2리 원희곡과 희곡3리 일자촌은 각각 30호∼45호 내외의 아담한 마을이다. 희곡2리 원학골은 함평 이씨 마을이다. 타성들도 있지만 예로부터 격을 달리해 대했다. 자연마을로는 원학골·도라말·소시미가 있다. 원학골을 처음 개척한 사람들은 원주원씨였다. 원주원씨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해 원학골이라고 블렀다. 도라말은 마을이 남서쪽으로 돌아앉았다고 해 붙여진 지명라고 한다. 소시미는 정확한 유래를 알 수 없다. 간척지에 형성된 마을이다 보니 가옥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희곡3리 일자촌은 예전에는 용인이씨가 여러 집 있었지만 근래에는 함평이씨가 대부분이다. 마을은 구릉을 중심으로 넓게 흩어져 있다. 개간하기 전 바닷물이 유입될 때에는 구릉 아래로 길게 늘어선 형태였다. 일자촌이라는 지명도 마을의 모양 때문에 유래됐다고 한다. 주민들 대다수를 차지하는 함평이씨는 대략 100년(3대)에서 150년(5대) 사이에 입향했다. 이 시기는 평택일대에서 여러 곳의 갯벌 간척이 활발하던 시기다.


일자촌에는 일자말·다락말·새터말·통뿌리와 같은 자연마을이 있다. 마을회관 남동쪽의 일자말은 가장 오래된 마을이다. 지금도 야트막한 구릉 아래 10여 호가 길게 늘어서 있다. 회관 북쪽의 높은 지대에 형성된 마을은 다락말이다. 다락말은 지형이 다른 곳보다 높아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경로당 주변은 새터말이다. 새터말은 일자말에 정착했던 사람들이 간척으로 농경지가 확대되면서 새로 형성한 마을이다. 오래 전 배가 닿았던 갯가 쪽 마을은 통뿌리이다. 통뿌리에는 서낭당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통뿌리 아래에는 바닷물이 들어오고 배가 닿았다. 뱃터에는 봄가을에 고깃배와 새우젓배가 들어와 곡식과 물물거래를 했다. 통뿌리 일대가 간척된 것은 한국전쟁 뒤다. 정부는 전쟁피란민과 마을 주민들에게 구호물자로 나온 밀가루를 임금으로 지급하면서 간척사업을 했다.



간척하기 전에는 바닷가였던 희곡2리 일자촌과 새터말(2008)

| 간척하기 전에는 바닷가였던 희곡2리 일자촌과 새터말(2008) |



주석

38) 이옥헌(76세), 황오용(74세), 2006년 8월 송내 마을에서 인터뷰
 이민형(78세, 노인회장), 이계탁(79세), 이진헌(80세), 최강용(62세), 이종구(63세) 2007년 1월 희곡2리 일자촌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