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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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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도곡리道谷里42)


대한제국시기 수원군 포내면이었다. 포내면에는 도곡·무수·진목·거산·당두·홍 원·용소·현석·서정을 비롯해 20여개 마을이 있었다. 1914년 도곡·무수리·진목리· 거산리·당두리를 통합해 진위군 포승면 도곡리라고 했다. 도곡이라는 지명은 ‘되틀이’라 는 자연지명에서 유래됐다.


자연마을로는 거산(1리)·진목(2리)·당두(3리)·원도곡(4리)·무수동(5리)이 있다. 도곡1리 거산은 거미라고도 부른다. 마을규모는 30여 호였지만 포승국가공단 건설 후 주택과 인구가 늘고 있다. 도곡2리 진목은 자연지명이 참나무쟁이로 30호에 미치지 못했다. 3리 당두는 자연지명이 당머리다. 당두는 약 30호로 진주하씨가 대성大姓이다. 이 마을과 진목 사이에는 도곡리 당산堂山이 있다. 당산의 머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당머리라고 불렀다. 4리 원도곡은 자연지명이 되틀·도틀·뒷들이라고 부른다. 마을 규모는 60호로 도곡리에서 가장 크다. 원도곡이라는 지명은 되틀에서 비롯됐다. 옛날 되틀에 수성최씨 집안에 대지주가 많아 주변의 소작농들이 마을에 와서 타작을 하게 되면서 남은 곡식까지도 모두 털렸다는 의미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5리는 무수동無愁洞이다. 무수동은 ‘근심걱정이 없는’이라는 뜻의 한자다. 한유지는 당머리 남쪽에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당머리와 붙어 있어 구별이 되지 않는다. 한유지는 노는 땅이라는 의미다. 옛날 놀고 있던 황무지에 마을이 형성됐다는 의미다.


당두마을의 상징은 당산堂山이다. 당산은 당머리와 참나무쟁이 마을 사이에 있다. 옛날에는 당산 옆으로 길이 났었다. 당산을 섬기게 된 것은 옛날 어떤 사람이 말이 달려와 품에 안기는 꿈을 꾼 뒤부터라고 한다. 주민들은 당산과 당목을 지극정성으로 섬겼다. 이곳에 빌면 도망갔던 소도 찾았고 아들 낳지 못하던 사람도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2000년 이후 도곡리는 큰 변화를 겪었다. 동진염전, 삼화염전이 있었던 마을 서쪽 바닷가에 포승국가공단이 입주하고, 공단 안에 대규모 택지가 개발되면서 도시가 확장됐다. 전통 자연마을과 신도시는 어색한 동거관계다. 서로 간의 교류도 거의 없고 문화적으로도 일체감을 갖기가 어렵다.



참나무쟁이로 잘 알려진 도곡리 진목마을(2007)

| 참나무쟁이로 잘 알려진 도곡리 진목마을(2007) |



주석

42) 김찬수(70세), 최해균(71세), 2005년 6월 도곡1리 거산마을 경로당에서 인터뷰
      양흥분(86세), 2005년 6월 당두마을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