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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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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원정리遠井里43)


조선시대 양성현 승량동면 지역이다. 내기리에서 남양만으로 길게 뻗은 반도에는 괴태곶이 발달했고 주산인 괴태산에는 괴태길곶 봉수가 있었다. 머물·번제와 같은 마을에는 괴태곶목장이 있었다. 갑오개혁 후 수원군 승량동면에 통합됐으며 1914년 진위군 포승면 원정리가 됐다. ‘원정’이라는 지명은 원정2리 머물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원정리는 서쪽으로는 아산만과 접했고 북쪽으로는 남양만방조제 및 남양호를 경계로 화성시와 인접했으며, 포승국가산업단지도 인접했고, 해군제2함대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는 지역이다. 북동쪽으로는 한국전쟁 뒤 염전이 발달했고 1974년 5월 남양만방조제 완공 후 2,285ha의 넓은 간척지가 조성되면서 화성염전들·당두염전들과 같은 곡창지대가 있다. 멍거니산 일대에는 LNG평택기지·평택화력발전소·기호물류(주)·석유공사 등 기간산업들이 자리 잡고 있다.


원정리에는 모두 8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본래부터 있었던 마을은 원정·번제·곡교·호암뿐이고 쌍용·한일·여술 마을은 남양만 간척 후 새로 조성된 마을이다. 원정1리 곡교는 마을 입구에 굽은 다리가 있어 우리말로 굽은다리 였는데 음이 변해 ‘고분다리’로 불렀다. 포승국가산업단지가 건설되면서 마을 전체가 원정7리 호암 마을 앞 화성염전들로 집단이주했다. 번제는 머물 남쪽 해군제2함대사령부로 들어가는 입구 부근에 있는 마을이다. 해군제2함대사령부가 주둔하면서 마을의 삼분의 일이 잘려나갔다. 번제는 1914년 바닷물이 들어와 넓은 호수를 이룬다고 해서 번호藩湖, 이곳에 제방을 쌓았다고 해서 번제로 불리다가 지명으로 굳어졌다. 원정7리 호암은 우리말로 ‘범바위’다. 범바위는 본래 괴태산 서쪽 해군제2함대사령부 자리에 있었던 마을이다. 농업과 어업, 수산업을 하며 살았던 마을인데 폐동되면서 괴태산 동북쪽으로 집단 이주했다. 원정6리 여술은 여울목의 다른 이름이다. 몇 호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었다가 한국전쟁 뒤 피란민들이 자리 잡으면서 마을이 커졌다. 1970년대 남양만이 간척되고 당두염전·화성농장들이 옥토로 바뀌면서 마을 규모가 커졌다. 원정4리·5리 한일이나 쌍룡도 간척사업 때 만들어진 마을이다.


원정7리 마을 안에 있는 수도사는 신라 852년(문성왕 14)에 염거화상이 창건한 절로 알려졌다. 661년 원효가 의상과 함께 도당유학을 가다가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견성오도 했다는 장소로 알려졌다. 현재의 사찰은 1960년 영석스님이 본래의 절터에서 벗어난 지역에 다시 지은 것이며, 근래에는 주지 적문스님의 사찰음식과 템플스테이로 유명해졌다.



괴태길곶봉수가 있었던 원정2리 머물(2007)

| 괴태길곶봉수가 있었던 원정2리 머물(2007) |



주석

43) 배용환(81세), 배성락(77세), 전현배(76세), 이병조(86세), 박창옥(75세), 2007년 2월 원정2리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