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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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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산리馬山里51)


갑오개혁 후 진위군 마산면이었다. 마산면은 오룡동·샛둑거리·숲안말·와골·안골·월경·산대 등 7개 마을이다. 1914년 오룡동五龍洞·신제리新堤里·수촌藪村·와곡리瓦谷里·내곡리만 통합해 마산리라고 했고 나머지 마을은 은산리와 용인군 남사면으로 넘어갔다.


마산리는 다학산과 태봉산 북쪽에 자리 잡았다. 자연마을은 오룡동(1리)·수촌(숲안말,2리)·와곡(왜골, 3리)·내곡(안골, 4리)로 형성됐다. 마산1리 ‘오룡동’은 마산리의 중심마을이다. 오룡은 다섯 마리 용이 승천할 명당자리에 마을이 형성됐다고 해 유래됐다. 단양우씨 안정공파安靖公派의 오백년 세거지였다. 지금은 많이 떠나고 여러 성씨가 섞여 산다. 농업을 주산업으로 하지만 일부는 창고임대업도 하고 회사원도 있다. 오룡동은 정월대보름 정제와 줄다리기 축제로 유명하다. 전통의 맥을 잘 계승하고 있다.


마산2리 ‘숲안말’은 1990년대 초만 해도 푸른 숲에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이었다. 마을 뒤로는 태봉산과 다학산 줄기가 포근히 감싸주었고 앞으로는 올망졸망한 작은 구릉이 사이사이를 가려주었다.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90년대 후반 마을 뒤에 럭키소재(주)·삼양우레탄(주) 같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다. 공장건설로 산이 허물어지고 골짜기가 메워지자 자연경관이 크게 훼손됐다. 1990년대 중반 스펀지공장에서 튀어 오른 불꽃이 산불로 번지는 바람에 태봉산에 큰 산불이 발생해 뒷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어버렸고 2002년 마을 앞으로 삼남대로가 확장되면서 전체 경관이 휑하니 드러났다. 근래에는 마을 뒤로 전원주택까지 들어서면서 경관이 크게 변했다. 숲안말의 호戶는 40호쯤 된다. 경주이씨가 대성이지만 150여 년 전부터 연주현씨도 들어와 세거하고 있다.


마산3리 ‘왜골’은 ‘와골’, ‘와곡’으로도 불린다. 왜골은 기와를 굽던 마을이어서 기와골이라도고 한다. 지금도 마을 입구 느티나무 근처에 옛 기와가마터가 있으며 가마터에는 굽다 만 기와편이 나온다고 한다.


내곡으로도 부르는 마산4리 안골은 순흥안씨들의 세거지다. 전체 25호 가운데 75%가 안씨였다. 현재 호는 40호다. 안골은 태봉산 자락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근래 공업단지조성이 발표돼 술렁거렸지만 지금은 잠잠하다. 주민들은 예로부터 농업에 종사하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서 옛날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마을경제가 나아진 것은 제3공화국 이후다. 새마을운동도 열심히 해 생활환경도 나아졌다. 점차 노령인구가 늘어나고 주변지역도 개발되고 있다.



줄다리기가 유명한 마산1리 오룡마을

| 줄다리기가 유명한 마산1리 오룡마을 |



기와 굽던 가마가 있었다는 마산3리 왜골

| 기와 굽던 가마가 있었다는 마산3리 왜골 |



주석

51) 이월례(74세), 최문화(76세), 신영순(76세), 장기영(84세), 전현국(75세, 이장), 2006년 1월 마산1리 경로당에서 인터뷰;  안병희(81세), 2011년 7월 마산4리 자택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