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 마을

본문 바로가기
마을>평택의 마을>서탄면>개관
■ 개관

본문

서탄면은 평택시의 가장 북쪽지역이다. 서북쪽으로는 화성시 양감면과 정남면, 북동쪽으 로는 오산시와 인접했다. 갑오개혁 뒤 진위군 이탄면·일서면·이서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일서면의 금암·내리(안말)·신리(새말)·마두·회화정 등 다섯 개 마을과, 이서면의 사동(절골)·수월암·도도리·종복·상내천·하내천·이탄면의 적봉·신야·장등·구억·야리·농소·금각·황구포를 통합해 일서면의 서西와 이탄면의 탄을 취해 서탄면이라고 했다. 면 소재지는 금암리다. 면사무소는 금암2리 안말에 있다. 일제 초기에는 금암1리 골안말에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가 있었는데 나중에 옮겼다고 한다.


서탄면의 면적은 28.7㎢로 평택시 면적의 6.3%이다. 2012년 6월 현재 인구는 1,786세대 4,033명으로 평택시에서 가장 적다. 남성은 2,177명, 여성은 1,856명으로 여성이 적다. 공공시설은 면소재지인 서탄면 금암2리에 모여 있다. 금암2리에는 면사무소·서탄초등학교·서탄보건지소·송탄농협 서탄지점·서탄우체국·서탄119안전센터 등이 있다. 내천리에 서탄초등학교 내수분교가 있으며, 2000년에 폐교된 금각리의 금각초등학교에 평택문화원에서 운영하는 체험학습공간 ‘웃다리문화촌’이 조성됐다.


지리적으로 서탄면은 산과 하천이 고르게 발달한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마을 뒤로는 해발 70∼80미터의 매봉산자락 낮은 구릉이 발달했고 동·서·남쪽으로는 진위천·오산천·황구지천이 흐르며, 하천 좌우로 드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1974년 아산만방조제가 준공되기 전 바닷물은 서탄면 황구지리와 회화리 부근까지 들어왔다. 인천 용유도·덕적도에서 소금이나 새우젓을 실은 배들이 황구지리의 항곶포까지 들어와 곡물과 교역했다. 일제 말 진위천은 사금砂金채취로도 유명했다. 사금을 채취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인 자본가들이었다. 처음엔 적봉리 가마골 일대에서 석유시추를 하다가 석유가 나오지 않자 사금채취에 눈을 돌렸다고 한다.


진위천·황구지천·오산천을 중심으로 경작지가 발달했다. 큰 들판으로는 금각리 일대의 금각들·미군기지에 편입된 양성들·회화리 일대의 해정들·마두리와 내천리 일대의 나빗들이 있다. 서탄면의 들판들은 본래 바닷물이 밀려드는 저습지였다. 조선전기만 해도 갈대가 무성한 간석지에 갯고랑이 형성됐고 군데군데 크고 작은 웅덩이도 있었다. 조선후기부터 간척해 경작지로 변모했다. 간척의 주체는 궁실·군영·고관들·사찰 등 다양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도 간척사업에 뛰어들었다. 해방 전후에도 양성들·해정들·황구지들에는 조선왕실의 토지, 공주방의 토지, 수어청과 같은 군영의 둔전, 용주사 토지 등이 흩어져 있었다.



K-55 미공군기지확장으로 수용된 황구지들(2006)

| K-55 미공군기지확장으로 수용된 황구지들(2006) |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