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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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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두리馬頭里57)


갑오개혁 후 진위군 일서면 지역이었다. 1914년 진위군 서탄면 마두리라고 했다. 마두馬頭라는 지명은 지형이 말머리처럼 생겨서 ‘말머리’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마두리의 자연마을은 말머리(1리)와 사업소(2리) 그리고 나빗들, 벌터로 나눠진다. 호가 적은 나빗들과 벌터는 마두1리에 속하기 때문에 행정적으로는 두 개 마을로 나눠졌다. 마두1리 ‘말머리’는 100호가 넘는 큰 마을이다. 옛날에는 진주 유씨와 남양 홍씨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외지인들이 유입되고 토성土姓들이 외지로 나가는 바람에 각성바지 마을이 됐다. 마을의 역사는 대략 400년쯤이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낮은 구릉 앞에 드넓게 펼쳐진 들판은 농경과 풍요를 말해준다. 마두리들이 개간된 시기는 분명치 않다. 다만 지형적 조건과 회화리, 금암리 등 주변마을의 개간시기를 고려할 때 조선후기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개간됐을 것으로 보인다. 개간 전에는 바닷물이 마을 앞까지 들어왔으며 나루터가 있어 배가 닿았다. 들판은 일찍부터 개간됐지만 해방 뒤까지 황무지가 많았다. 황구지천과 오산천의 범람으로 수해·염해가 잦았고 농업용수도 부족해 생산력도 낮았다. 수해·염해·농업용수 부족은 1970년대 아산만방조제 준공과 경지정리사업으로 해결됐다.


마두2리는 피란민정착촌이다. 1952년 경기도지사의 허가를 얻어 난민 125호가 연백난민 정착촌(사업소)을 만들면서 형성됐다. 당시 마을 주변에는 적산농지 36만 평이 있었는데 정부에서 1호 당 3천 평씩 임대해 정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피란민들은 3년 동안 정부 구호품으로 연명하며 개간에 성공했다.



마두리의 중심마을 마두1리 말머리(2007)

| 마두리의 중심마을 마두1리 말머리(2007) |





(5) 내천리奈川里58)


갑오개혁 뒤 진위군 이서면이었다. 1914년 상내천리와 하내천리를 통합해 내천리라고 했다. 내천리의 자연지명은 ‘머드내’ 또는 ‘버드내’다. 버드내는 윗버드내(1리)와 아랫버드내(2리)로 나뉜다.


내천1리 ‘윗버드내’는 이주민을 포함해 100여 세대, 토착민만 60∼70세대가 넘는다. 주민들은 해방 전후에도 60호가 넘었다고 한다. 순창조씨와 풍양조씨가 함께 거주한다. 두성씨는 대략 250여 년 되어 입향入鄕시기가 거의 같다.


내천2리 아랫버드내는 전주이씨·전주최씨·청주한씨가 마을을 이루고 산다. 가장 오래 세거한 성씨는 이씨와 최씨다. 주산主山인 밤나무동산을 중심으로 골말과 새터말, 벌말로 나눠진다. 이것은 백여 년 전 마을의 호 수가 많지 않을 때 간척사업으로 점차 마을이 확대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골말은 내수교회 아랫동내로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새터말은 골말과 벌말의 중간이며 간척사업으로 농경지의 저지대 확산이 이뤄지면서 새로 생겨난 마을이다. 벌말은 마을회관이 있는 곳인데 벌판 쪽에 나 앉아서 유래됐다.


내천리는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드나들고 수해와 염해가 많았다. 교통이 발달하고 일찍부터 간척이 이뤄졌던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사람들은 이 같은 자연조건을 극복하며 살아왔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논농사 지대였다. 지금도 밭농사 지대였던 구릉만 배 과수농업이 발달했고 대부분 논농사를 위주로 한다. 1970∼80년대 정부의 축산장려정책으로 7∼8호까지 증가했던 축산농가는 대부분 없어졌다. 아산만방조제가 준공되기 전 농업용수는 보를 막아서 얻었다. 제기개울의 보洑는 동네에서 1㎞나 떨어져 있었고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내천리와 화성시에 속한 제기리 일대의 농업용수 공급에 큰 역할을 했다.


내천리는 교육열이 높다. 교육기관으로는 서탄초등학교와 내천강습소가 있었다. 서탄초등학교는 경제력이 있고 똘똘한 사람만 입학했고 내천강습소는 가난하거나 초등학교 시험에 떨어진 사람이 입학했다. 경제력이 더 나은 사람은 오산심상소학교에 다녔다. 오산학교에는 고등과가 있어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고등학교과정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주석

57) 이성구(70세), 마두2리 노인회장, 2006년 1월 마두2리 경로당에서 인터뷰
58) 조석기(78세), 조성기(78세), 2006년 1월 내천1리 경로당에서 인터뷰
 차태용(73세), 한상웅(68세), 최종열(73세), 정영도(74세), 2006년 1월 내천2리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