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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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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금각리金角里60)


갑오개혁 뒤 진위군 이탄면이었다. 1914년 농소리·금각리·황구포리를 통합해 금각리라고 했다. 금각金角이라는 지명은 ‘쇠뿌리’에서 왔다. 한자로 ‘우각牛角’이라고도 했고, 소리나는 대로 표기해 ‘금각’이라고도 했다.


금각2리가 폐동되기 전 금각리는 상금각(1리)과 하금각(2리)으로 형성됐다. 하금각은 진위천 변의 농소리와 황구포리 주민들이 수해를 견디지 못하고 이주한 곳이다. 1952년 미군기지 확장으로 폐동된 장등리와 적봉리 주민들 일부가 이주하면서 형성됐다. 상금각이 48호, 하금각이 30호쯤이다.


금각리는 마을 앞으로 펼쳐진 금각들과 당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풍요로운 마을이다. 금각들 끄트머리에는 진위천이 흘러 각종 해산물이 많았다. 주민들은 해방 전후 저습한 황무지였던 황구지들을 지나 진위천 갯벌에서 농게와 각종 어패류를 잡았던 이야기를 많이한다. 진위천과 가까워 제방이 쌓이기 전에는 수해를 많이 입었다. 수해는 금각1리보다 금각2리가 자주 입었다. 수해가 나면 황구지리와 금각2리 주민들은 금각초등학교로 피란했다. 갯가와 가까이 있어 좋은 식수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금각1리에 있는 장자우물은 마을의 자랑이었고 신성성이 부여되다보니 나중에는 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고까지 믿게 됐다. 금각리는 당제와 두레 같은 공동제의와 공동노동조직이 발달했다. 서로 돕고 협동하며 가난을 극복하고 살아온 소중한 전통이다. 현재 금각2리는 미군기지 확장으로 폐동됐다. 주민들 일부는 당현리에 새 동네를 조성해 집단 이주했지만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졌다.



주석

60) 이경태(71세), 이정섭(76세), 2004년 1월 금각1리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