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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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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좌교리坐橋里65)


좌교리는 조선시대 고두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좌교리와 옹정리에 동청리 일부가 통합되는 과정에서 좌교리로 편제됐다. 바람산·함박산을 배경으로 들이 넓고 남동쪽으로 서정천이 흘러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됐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이었으나 1914년 고덕면이 형성될 때 면사무소와 초등학교(행정구역상으로는 해창리)가 들어오면서 공무원·교사·회사원 같은 비 농업인구의 비중도 높아졌다. 좌교리의 자연마을은 좌교1리(앉은다리)·좌교2리(옹정)·좌교3리(새터, 좌신기)·좌교4리(중앙동, 면실)가 있다.


좌교1리의 자연지명은 ‘앉은다리’로 ‘원좌교’라고도 부른다. 앉은다리는 남평 문씨 강성군파의 5백년 세거지로 전체 가호家戶는 60호이다.


좌교2리는 ‘옹정甕井’으로 ‘독우물’이라는 뜻이 있다. 주민들은 ‘도구머리’로도 부른다. 이 마을은 고덕면사무소·고덕초등학교·단위농협을 가까이 두고 있으며 마을 뒷산에 화장품 공장이 있어 해방 전후만 해도 50여 호였으나 현재는 150여 호에 달한다. 성씨는 밀양박씨·평택임씨·김해김씨가 많다. 경제적으로 농업인구가 많지만 면소재지 특성상 상업인구·공무원·회사원 등 직업 분포가 다양하다.


좌교3리는 ‘좌신기’ 또는 ‘새터’다. 좌신기는 좌교리에서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해창들과 구동안들이 간척되면서 조성된 마을이다. 해방 후나 지금이나 60호가 넘는다. 농업인구가 대다수이나 비교적 풍족하다.


좌교4리는 ‘중앙’동 또는 ‘면실’이다. 본래 큰길가에 주막이 형성돼 ‘주막거리’라고 불렀다. 1914년 면사무소를 두면서 ‘중앙동’ 또는 ‘면실’이라고 불렀다. 초기에는 민가 몇 호와 상가뿐이었으나 점차 인구가 늘어 현재는 100여 호 가까이 살고 있다. 직업은 농민뿐 아니라 회사원, 자영업자 등 다양하다.



앉은다리라는 지명이 옛스러운 좌교1리(2007)

| 앉은다리라는 지명이 옛스러운 좌교1리(2007) |



주석

65) 문제환(83세), 2003년 1월 좌교1리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