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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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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동고리東古里


조선시대 진위현 고두면 지역이다. 1914년 수어창리·평택군(현 팽성읍) 북면의 신환포리·구창리와 통합해 고덕면 동고리가 됐다. 동고리는 남쪽으로 안성천이 휘감아 돌고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유입돼 포구와 갯벌이 발달했다. 조선후기에는 동고2리에 이포나루가 있었으며, 궁방宮房이나 군영軍營에 의해 갯벌이 간척되면서 경작지가 확대되고 인구가 증가했다.


동고1리는 ‘정자동’이다. 마을 중앙에 오래된 느티나무 정자가 있어 유래됐다. 해방 전후에는 20∼30호 정도였지만 공동주택이 들어서면서 현재는 100세대가 넘는다. 조선후기부터 궁방전이나 둔토屯土를 경작하는 농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지금도 전형적인 논농사지대를 이루며 원주민들은 농업인구가 많다.


동고2리는 자연지명으로 ‘됑구리’ 또는 동고리의 본 마을이라고 해 ‘원동고’라고 부른다. 해방 전후에 70여 호였지만 현재는 연립주택 거주민을 빼고도 90호가 넘는다. 안성천변에 형성됐다. 형성 시기는 수어창들과 번개들의 간척이 진행된 150∼200년 내외로 추정된다. 본래 신환포리·구창리·신창말·수어창리·소청말로 구분됐는데, 지금은 윗뜸·중간뜸·아랫뜸으로 구분한다. 원동고의 경제기반은 국도 38호선 북쪽의 궁틀과 마을 남쪽의 모래둑들 그리고 번개들이다. 빈한했지만 지속적인 간척사업과 아산만방조제 건설로 대농大農이 된 사람이 많다.


수어창리는 동고2리에 있었던 옛 마을이다. 이 마을은 남한산성 방어를 위해 설치했던 수어청의 둔토屯土가 있었다. 신환포리는 원동고 마을 서남쪽에 있었던 20여 호 정도의 마을로 신환포라는 포구가 있었다. 구창리는 원동고 마을 중뜸에 있었던 마을로 수어청의 세곡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동고리 일대의 토지를 소유했던 가능농장은 원동고 윗뜸에 창고를 다시 지었고 이때 유래된 지명이 신창말이다. 소청말은 원동고마을 서쪽에 있었던 이포나루에 형성된 마을이다. 이포나루는 일제강점기에 아래소청나루로 불렀다.



이포나루가 있었던 동고리 일대(2007)

| 이포나루가 있었던 동고리 일대(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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