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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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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동청리東淸里70)


동청리는 근대 이전 진위천을 건너는 ‘동청포’가 있어 유래됐다. 고려시대에는 종덕장에 속했고,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양성현에 속했다. 1896년 지방제도 개편 때 수원군 율북면에 편입됐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수원군 종덕면의 가산리·율북면의 동청리·수북면의 동안리를 통합해 동청리가 됐다. 자연마을로는 가산(개미)·동쳉이(동체)·구동안이 있다.


동청1리의 자연지명은 ‘가산’ 또는 ‘개미’다. 개미라는 지명은 ‘마을에 개미가 많아서’ 유래됐다는 설과 ‘산세가 개미형국이어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약 60호로 김해허씨와 수성최씨 찬성공파가 대성大姓이다. 동청들과 계루지들을 경제기반으로 삼으며 일부는 문곡리 일대에도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


동청2리의 자연지명은 ‘동쳉이’ 또는 ‘원동청’이다. 본래 동청나루 옆에 형성된 마을이다. 조선시대에 나루터 옆에 주막집과 아산만에서 올라오는 소금과 어물을 거래하는 상인들이 일부 거주하는 마을이 있었다가 근대 이후 나루의 기능이 약화되고 동청들이 간척되면서 마을 규모가 커졌다. 동청포가 있던 나루는 마을 동남쪽 계루지벌의 뱃터에 있었는데 일제말 간척사업과 진위천 제방사업으로 동연교 아래쪽으로 옮겨갔다. 나루가 발달했을 때에는 마을 동쪽에 장시場市도 있었다. 현재 마을 안에 농협에서 운영하는 도정공장이 있다.


동청3리의 자연지명은 ‘구동안’이다. 전체 호는 13호에 불과하며 순흥안씨가 다수다. 구동안들을 개간하면서 형성됐기 때문에 거의 논농사에 종사한다. 경작지를 많이 보유했지만 예전에는 수해와 염해가 많았다.



구동안들과 동청1리 개미마을(2007)

| 구동안들과 동청1리 개미마을(2007) |



주석

70) 김태옥(74세), 최용화, 2004년 마을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