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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의 근대적 경찰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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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의 근대적 경찰제도는 1910년 수원헌병대평택분견대부터 비롯된다. 1919년 종래의 헌병과 경찰의 종합제도에서 분리해 경찰행정이 독립하게 되자 분견대가 진위군 평택경찰 서로 명칭을 바꾸고 각 면단위로 현 위치에다 경찰관주재소를 설치했다. 1938년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개칭되면서 평택군 평택경찰서로 개칭되어 해방 때까지 존속했다.
1945년 해방 이후 경찰이 해산돼 치안이 혼란해지자 인민위원회를 구성한 좌익과 건국 준비위원회를 구성한 우익은 서로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 전국에 치안대治安隊를 조직하고 중앙에는 경찰건설위원회가 조직된다.
1945년 10월 21일 미군정은 해방 전 한국인 경찰관을 다시 모아 경찰 직급을 종전대로 적용한 경찰 행정을 실시하게 된다. 군정청 경무국이 발족되고 경기도 경무부가 신설되면 서 평택군 경찰서는 도지사 산하 경무부에 속했다. 당시 평택군경찰서의 책임자는 미 육군하사 하치였고 초대 경찰서장으로 가창현賈昶鉉이 취임했다.
1946년 9월 24일 관구경찰청제管區警察廳制를 실시하면서 경기도 경무부는 제1관구청으로 개칭됐다. 시·군 경찰서는 구서區署로, 주재소는 지서支署로 개편됐다. 경기도내 각 경 찰서를 감독할 감찰서가 생겨 수원 감찰서 감독을 받게 된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경찰은 국립경찰로 거듭나는데 관구청은 폐지돼 다시 도지사 산하로 들어가며 경무국으로 개칭됐다. 각 시·군의 구서區署도 시·군의 명칭을 써서 경찰서로 하게 돼 평택군은 평택경찰서로 개칭 되면서 9개 지서와 2개 파출소가 소속 되게 됐다.
1950년 한국전쟁 중에 평택5리에 있던 구청사가 전소됐고 1953년 비전동에 현 청사가 준공됐다. 1955년에 서정지서를 송탄지서로, 하북지서를 진위지서로, 안중지서를 오성지서로 개칭했으며 1962년 송탄지서를 서정리에서 신장리로 이전하면서 서정리에는 서정출장소가 설치된다.
1975년 송서지서가 신설됐고 서정출장소는 서정지서로 승격했으며 1979년 성북파출소가 신설됐다. 1981년 송탄읍이 송탄시로 승격했으나 경찰행정은 평택경찰서가 계속 관장 했고 송탄지서·송서지서·서정지서가 각각 파출소로 개칭됐다.
1989년 평택경찰서 방범순찰대가 발대했고 12월 평택경찰서가 개축 준공됐으며, 같은달에 동부파출소도 신설됐다. 1991년 오성출장소가 신설됐고 1994년 팽성·진위파출소 가, 1995년 서탄파출소가 각각 개축·준공했으며 1995년 평택군·송탄시·평택시 통합이후 평택경찰서 규모도 확대돼 1996년 5월 청사가 증축됐고 9월에는 호송출장소가 개소 됐으며 같은 달 고덕파출소도 개축 준공됐다. 1997년 10월 성동파출소가 비전1동파출소로, 동부파출소는 비전2동파출소로, 성북파출소는 통복파출소로, 송서파출소는 신장2파 출소로 명칭이 변경됐다. 11월 신장2파출소가 개축 준공됐고, 1999년 9월 서정파출소가 개축 준공됐다.
이후, 통복파출소를 평택지구대로, 서정파출소를 서정지구대로 개편했다. 2001년 11월 정보보안과 외사계 해양분실 신설, 2003년 8월 안중파출소를 서부지구대로 개편해 평택 서부지역을 담당했다. 2004년 2월 안중지구대로 승격 개편해 서부 4개 읍·면을 관할, 2010년 5월 직제변경으로 다시 안중·현덕·청북·오성파출소로 분리 개편해 현재까지 서부지역 치안책임을 맡고 있다.



| 평택경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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