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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대별 교육제도와 평택교육>근대 개화기
■ 근대 개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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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고종 13) 2월 ‘강화도조약’9)이 체결 됐다. 일본이 군사력을 동원해 강압으로 체결한 ‘조일수호조규朝日守護條規’이며, ‘병자수호조약丙子修護條約’이라고도 한다.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고 문호를 개방했다. 1880년 전후 일본·미국·독일·러시아·영국 등과 국제외교관계를 맺었다. 외국의 새로운 제도 및 기술을 도입해 근대문화 를 이룩하려는 움직임이 활 발해지고, 서양식 근대학교 교육도 시작됐다. 1894년 7월 갑오개혁, 1895년 2월 ‘교육입국조서’가 발표 됐다. 1897년 대한제국시대는 급격한 사회제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개화사상이 싹트고 사회기강이 문란해지면서 정치세력과 민중은 괴리되기 시작했다.










+ 학교설립 운동

+ 갑오교육개혁

+ 평택의 근대 교육기관

주석

9) 일본은 부산항에서 함포 위협시위를 벌이고, 강화도에서 ‘운요호사건’을 유발했다. 1876년 2월 27일 ‘신헌’ 과 ‘구로다 기요다카’ 사이에 12조의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게 됐다. 1876년에 ‘강화도조약’이, 1881년에는 정부의 개화정책이 추진이 됐다. 1882년에는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1894년에는 갑오개혁이 일어났다. 그 후 영국과 독일 등과도 ‘우호통상조약’을 맺기 시작했다. 이에 백성들의 사고와 의식이 전환되는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다. 필자는 1876년의 강화도조약과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시대 구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