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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의 근대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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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대이전 체육은 대부분 민속적인 측면과 심신단련 측면으로 진행돼 왔다. 주로 줄다리기·얼레공치기·씨름·기마전·그네뛰기·널뛰기·격구·활쏘기 등을 해왔으며 현재 각종 명절이나 민속행사에서 계승되고 있다. 평택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단오제나 정월대보름축제 등의 명절행사와 평택시민체육대회 등 각종체육대회에서 계승하고 있다.
대한민국 근대체육은 19세기 중엽 개항이후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1895년 신교육제도가 실시되면서 체육이 학교제도 속에서 체계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896년 외국어학당 설립과 외국인 교사들에 의해 축구를 비롯한 근대스포츠가 학생들에게 소개됐다. 이후 각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렸고 연합운동회로까지 발전했다.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가 발족하고 ‘제1회 조선야구대회’를 시작으로 1929년 ‘전 조선 종합경기대회’를 열었다. 지방체육도 일제강점기 하에서 활기를 띄어 각종 체육단체가 설립되고 다양한 체육대회가 개최됐다.
지방체육 활동과 더불어 평택체육이 어떠했는지 신문보도를 통해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평택지역에 대한 최초의 기사는 1917년 매일신보에 진위군청년체육구락부 주최로 운동회를 개최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체육 활동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남아 있는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진위군청년체육구락부 주최 운동회 기사
(매일신보. 1917. 5. 27) |



•각종단체와 조합 등의 주최로 각 신문사에서 후원해 평택군민을 위한 운동회를 개최했으며 학교·조합·면·관공서·
   청년대 등이 참가했다.

•1917년 5월 27일 진위군청년체육구락부 주최로 운동회를 개최했다.

•1920년 5월 2일 평택곡물매매조합주관으로 평택연합대운동회가 열렸다. 조합과 지역의 유지들이 성금을 보태
   설비를 정돈하고 상품을 풍부히 했으며, 경성의 일류악대를 초청 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1928년 6월 3일 평택곡물상조합과 합동운송주식회사에서 주최하고 20여 개의 단체와 각 신문사가 후원해
   평택철도용지 광장에서 시민대운동회를 개최했다.

•1940년 11월 3일 평택군과 평택체육회가 주최하고 매일신보 평택지국후원으로 성동소학교에서 평택연합체육대회
   를 개최했다. 각 종목 선수는 500여 명에 관람객은 3,000여명이었다.

•1940년 10월 5일 평택군교육회와 평택군청년단체육회 주최로 성동국민학교에서 평택군민체육대회를 개최했다.

•1942년 10월 18일 평택군체육진흥회 주최로 성동국민학교에서 체육연성회를 개최했다.
   40여종의 경기에 관람객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각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대운동회를 개최한 것으로 보이며, 비정기적으로 각 학교가 연합해 대운동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1921년 5월 15일 평택공립보통학교에서 춘기대운동회를 진행해 군수와 지역유지들이 성금을 보태고 경성에서 일
   류악대를 초청했다.

•1922년 5월 7일 평택공립보통학교 춘계대운동회를 개최해 일반 학부형과 다수 내빈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1924년 5월 27일 안중공립보통학교에서 ‘제1회 춘계대운동회’를 개최해 4∼5천 명의 관중이 밀집했으며 40여 종
   의 경기를 진행했다.

•6월 3일 진위군청이 개최하고 진위청년회가 후원해 평택역 광장에서 각 학교 연합으로 ‘평택연합대운동회’를 열었
   다. 평택공립보통학교·안중공립보통학교·서정리공립보통학교·진위공립보통학교·심소연합대연동회 등에서 1,500
   여 명이 도보경주를 시작으로 운동경기를 진행했다.

•1925년 10월 4일 평택공립보통학교에서는 추기대운동회를 개최했으며 600여 명의 학생이 오십 여종의 경기를
   하고 5000여 명의 관중이 모였다.

•1935년 5월 5일 진위군교육회주최로 진위군 1면1교 완성축하 연합대운동회를 개최해 11개교가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평택에서는 야구·축구·얼레공치기 등 각종구기대회가 개최됐다. 1939년부터 1940년에 걸쳐 정기적으로 평택전조선축구대회가 열리는 등 정기·비정기적인 구기대회가 개최됐다.




| 제1회 전조선얼레공치기대회 기사
(동아일보. 1931. 2. 5) |



•1917년 3월 17일 청년들이 신체를 건강하게 할 목적으로 진위야구부를 조직했다.

•1925년 6월 22일 안성공립보통학교에서 평택소년축구군과 안성소년축구군이 경기를 했다.

•1931년 2월 1일 수원소년동맹양감지부 주최로 용소리 진위천변에서 제1회 전조선얼레공치기대회를 개최했으며,
   32개팀 160여 명이 출전해 두릉야학이 우승을 차지했다.

•1933년 9월 3일 평택체육회에서 주최하고 동아, 조선일보 양 평택지국 후원으로 중조선 연식야구대회를 개최했다.

•1939년 8월 12∼13일 평택공설그라운드에서 평택전조선축구대회가 개최됐으며 8팀이 참가해 결승전에서
   안성군이 평택군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1940년 6월 23일 평택축구구락부에서 주최해 평택소학교에서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를 개최했다. 참가팀은
   14조로 나누어 경기를 하고 평택군이 최종 우승했다. 특히 구기 종목 중 정구는 전국적으로 높은 인기를 얻었으며    평택에도 구락부가 만들어져 주변지역과 많은 교류시합을 갖고 정기적으로 정구대회를 개최됐다.

•1921년 7월 3일 안성정구단이 원정단을 조직해 평택정구구락부와 평택심상소학교에서 정구전을 개최했으며 7월
   30일 평택·조치원 기타 연합정구대회가 천안에서 개최됐다.

•1923년 8월 19일 평택정구회 주최로 평택심상소학교 코트에서 진위 대 안성정구대회를 개최해 진위군이 승리를
   거뒀다.

•9월 23일 동아일보 평택지국이 주최하고 조선일보 평택지국이 후원해 평택시장내 진위청년회운동장에서 ‘진위
   소년정구대회’를 개최했다.

•1924년 8월 10일 평택소년회가 주최하고 시대일보 평택지국과 동아일보 평택지국 후원으로 평택소학교에서
   중선정구대회를 개최했다.

•1925년 8월~9월에 걸쳐 평택소년회가 주최하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양 평택지국의 후원으로 평택공립보통
   학교에서 제1∼2회 ‘중부조선 개인 정구대회’를 개최했다.

•1927년 8월 14∼15일 진위청년회가 주최하고, 조선·동아 양지국급 평택소년회에서 후원해 평택공립보통학교
   코트에서 제3회 중선정구대회를 개최했다. 11개 단체를 55개조로 나누어 14일 예선전을 치루고 15일 결승전은
   경성군과 서정리군이 맞붙어 경성군이 우승했다.

•8월 27일 평택소년회 주최로 제4회 중선소년정구회를 개최했다.

•시장에서 장날 ‘각희대회’를 개최하고 부상 품을 걸어 군민과 함께했고 큰 인기를 끌었다.
   음력 7월 15일부터 8월 5일까지 평택시민 주최로 매시일每市日 각희(씨름)대회를 개최했다. 상품으로는 황우
   2마리외에도 부상 품이 다양하고 15일에는 관중이 무려 수천에 달하는 등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처럼 평택에서는 근대화와 함께 근대체육이 발전했다. 각 학교 운동회뿐 아니라 대부분의 체육대회가 학교의 기반시설을 이용해 대회를 개최 한 것으로 미루어 학교교육 발전 이 평택의 근대 체육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체육대회는 관에서 주최하는 것뿐 아니라 각종단체에서 주최하는 민중의 움직임도 보인다. 일제강점 하에서 체육활 동이 일본인들의 용인 하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타협적인 한계를 갖지만 민족이 단결할 수 있는 구심체가 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하고 중등교육기관이 설립돼 체육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체육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했으며 정치적인 목 적으로 적극 육성되는 등 다양하게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