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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지명유래 > 포승읍
■ 포승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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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리內基里


조선시대 양성현 승량동면. 1914년 내기·어은동·승량면 원택리 일부·안외면 제촌·신대리·능동陵洞·직촌을 통합해 내기리라 했다.



• 안터 : 내기1리의 마을. ‘내기內基’라고도 부른다.

• 승학동乘鶴洞 : 내기2리의 마을. 풍수지리적으로 학이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형세라 해서 유래됐다.

• 정문동旌門洞 : 내기3리의 마을. 이대원 장군의 충신정문이 있어 유래됐다.

• 신대新垈 : 옛날 바닷물이 들어오던 곳. ‘고잔’이라고도 한다.

• 재촌宰村 : 내기5리로 승배산에 제를 올리던 마을. ‘잿말’이라고도 한다.

• 이촌裡村 : 마을의 위치가 깊이 들어가 있어 유래됐다.



도곡리道谷里


조선시대 양성현 지역. 1914년 도곡·무수리·진목리·거산리·당두리를 통합해 도곡리라 했다.



• 도곡 : 불당산佛堂山에 있는 사찰의 승려들이 도를 닦았던 마을. ‘도틀’, ‘되틀이’라고 하다가 한자로 ‘도곡’이 됐다.

• 거산巨山 : 도곡1리의 마을. 마을 뒷산의 모양이 궤가 엎드린 것과 같다고 해서 ‘궤산’이라고 하다가 ‘거산’ 또는
     ‘거뫼’로 변했다 한다.

• 진목동眞木洞 : 도곡2리의 마을. 참나무가 많아서 ‘참나무쟁이’, ‘진나무말’이라고 했던것에서 유래됐다.

• 당두堂頭 : 도곡3리의 마을. 당두마을의 제당이 있는 산의 머리 부분에 형성됐다.

• 원도곡元道谷 : 도곡4리의 마을. ‘되틀’에서 유래됐다.

• 무수無愁 : 도곡5리의 마을. 근심 없이 살기 좋은 곳에서 유래됐다.



만호리晩湖里


대진大津이 있던 포구마을. 조선 초에 수군도만호 또는 수군만호가 설치됐다. 조선시대 직산현 외야곶면이었고 1914년 수원군 포내면의 만포晩浦·안외면 만호리 일부·원촌院村·유곡을 통합해 만호리라 했다.



• 상만호上晩湖 : 만호1리의 자연지명. ‘느지’, ‘윗느지(상만호, 큰말)’와 ‘아랫느지(하만호)’로 구분된다.

• 대정大井 : 만호3리의 마을. 큰 우물이 있어 유래됐다.

• 원기院基 : 만호4리의 마을. ‘원터’, ‘원막’이라고도 한다. 조선 초 수군만호가 주둔한 것으로 추정된다. 포승제2산단
     건설로 2013년 현재 폐동됐다.

• 연암鳶岩 : 만호5리의 마을. ‘솔개바위’라고도 부른다.

• 대진 : 만호5리에 있던 나루로 솔개바위나루라고도 했다. 통일신라시대 당나라를 오가는 뱃터라고 전해지며,
     근대 전후에는 충청도 내포지역과 안중장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현재 평택항이다.



방림리芳林里


조선시대 양성현 승량동면 지역. 대덕산 아래로 숲이 울창하고 아름다워 ‘뱅골’ ‘방곡’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순화돼 ‘방림’이 됐다. 1914년 방림동·전촌箭村·원택院宅리 일부·현암면 전촌리·포내면 미평을 통합해 방림리라 했다.



• 이평泥坪 : 방림1리의 마을. 땅이 질어서 ‘진틀’이라 했다.

• 상전촌上箭村 : 방림2리의 마을. 고려 때 신영장이 설치되어 활과 화살을 만들어 ‘살치미’라고 했던 것을 상하
     두 마을로 나누며 유래됐다.

• 하전촌下箭村 : 방림3리의 마을. 화살을 만들던 마을이다.

• 뱅골 : 원방림의 우리말 이름. ‘방골’, ‘방곡’이라고 했다.

• 대덕산 : 방림리와 내리 사이의 산. 옛 신영장의 주산으로 정상에 산신제당이 있다.



석정리石井里


조선시대 수원부 포내면 지역. 1914년 해조리海潮·성외리城外·용소동龍沼·현석리·서정리·감탕리·양지촌·고장동·야동을 통합해 현석과 서정리에서 한글자씩 취해 석정리라고 했다.



• 감기甘基 : 석정1리의 마을. 바닷가에 위치해 ‘감탕개’라고도 했다.

• 신기新基 : 석정2리의 마을. 새로 터를 잡아서 유래됐다. ‘새터말’이라고도 한다.

• 야동冶洞 : 석정3리의 자연마을. 대장간이 있어 ‘풀무골’이라고도 했다.

• 서정리西井里 : 석정4리 원석정. 좋은 우물이 있어 ‘서둔물’, ‘섯우물’이라고도 했다.

• 현석玄石 : 석정5리 자연마을. 바닷가로 넘어가는 모퉁이에 검은돌이 있어 유래됐다.

• 용소龍沼 : 석정6리의 자연마을. 큰 웅덩이가 있어 유래됐다. ‘용소말’이라고도 한다.

• 고장동高壯洞 : 석정리의 자연마을. ‘고장말’이라고도 한다.



신영리新榮里


고려시대 신영장의 중심마을. 조선시대 직산현 외야곶면 지역이다. 1914년 신영리·가장동 일부·안외면 신영리·현암면 신령리·서두호西杜湖를 통합해 신영리라 했다.



• 직산동稷山洞 : 신영1리. 직산현 지역이어서 ‘직산골’, 나무가 흔해서 ‘장작골’이라고도 한다.

• 매상동 : 신영2리의 자연마을. 두매리의 서쪽에 있어 ‘서두매’, ‘서두호’라고도 했다.

• 중간촌中間村 : 신영3리 ‘중촌中村’. 옛 양성현 지역이어서 ‘양성말’이라고도 한다.

• 가장동佳庄洞 : 신영4리. 농사짓기 좋은 지역이어서 유래됐다.

• 벽장골 : 으슥하고 후미진 곳. 도망친 병사들이나 도피자들이 숨어살았다고 해서 유래됐다.

• 신전포 : 신영리 바닷가의 포구. 간척한 지역이어서 ‘새밭땅’이라고도 한다. 평택항 개발로 사라졌다.



원정리遠井里


조선시대 양성현 승량동면 지역. 1914년 원정리·번호·곡교曲橋를 통합해 원정리라 했다. 조선시대 이곳에서는 국영마장인 ‘괴태곶목장’, ‘양야곶목장’이 있었고, ‘괴태길곶봉수’가 있었다.



• 머물 : 원정2리의 자연지명. 목장에서 먼 곳에 우물이 있어 ‘머물’, ‘원정遠井’이라고 했다.

• 곡교曲橋 : 원정1리의 마을. 마을 서쪽에 굽은 돌다리가 있어 ‘구분다리’ 또는 ‘고분다리’라고도 했다. 포승국가공단
     공사로 폐동돼 화성염전들로 집단 이주했다.

• 번제潘提 : 원정3리의 자연지명. ‘번호리’라고도 불렀다.

• 쌍용雙龍 : 원정4리의 자연지명. 1970년대 말 쌍용건설이 대청댐 수몰민들의 정착촌을 만들면서 유래됐다.

• 여술 : 원정6리의 자연지명.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정착한 곳에 대청댐 수몰민들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커졌다.

• 호암虎岩 : 원정 7리의 자연지명. ‘서번호리’라고 했다. 해군제2함대사령부 쪽에 마을이 있을 때 호랑이를 닮은
    바위가 있어 ‘범바위’라고 했던 데서 유래했다. 괴태산 반대편으로 이주했다.

• 신촌新村 : 원정 9리의 마을지명.



홍원리洪原釐


홍원곶에 형성된 마을로 조선시대 수원부 포내면에 속했다. 조선후기 홍원목장이 있었고 1914년 포승면 홍원리가 됐다.



• 외원外原 : 홍원 1리의 자연지명. 연백사업들 간척사업 때 모여든 황해도 피난민들이 정착해 만든 마을이다.
     마장의 바깥쪽에 있다.

• 연백사업장延白事業場 : 1960년대 초 황해도 연백피난민들을 동원해 홍원리-옥길리 사이를 간척하며 유래된 지명.

• 마장馬場 : 홍원 2리의 자연지명. 조선시대 마장이 있던 마을로 갑오개혁 때 폐지됐다. 마장황골이라는 지명도 있다.

• 자오子午 : 홍원 3리의 자연지명. 조선후기 자오포가 있던 마을이다.

• 1·2·3지구 : 홍원4·5·6·7리. 대청댐 수몰민들의 정착촌이다.



희곡리希谷里


조선시대 직산현 외야곶면 지역. 1914년 가장동 일부·송내·승량면 희곡·안외면 송내·만호리 일부를 통합해 희곡리라 했다.



• 송내松內 : 희곡1리 자연지명. ‘솔안말’, ‘안터’라고도 부른다. 소나무 숲 안쪽에 형성된 마을에서 유래했다.

• 일자촌一字村 : 희곡2리 자연마을. 바닷가 쪽에 일자 형태로 마을이 형성됐다.

• 원희곡元希谷 : 희곡3리 자연마을. ‘희여울’이라고도 하며 희곡이라는 지명이 여기에서 비롯됐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