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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지명유래 > 고덕면
■ 고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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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宮里


수원군 오타면 지역. 1914년 고두면의 건곤·오타면의 건곤과 궁리·신리를 통합해 궁리라 했다.



• 궁리宮里 : 조선후기 마을에 궁방전이 많아 ‘궁말’, ‘궁안’으로 불렀던 것이 한자로 표기하면서 유래됐다.

• 다루지 : 궁1리의 자연지명. 다라고비진이 있었던 곳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 다라고비진 : 진위천 변 궁안교와 서청천이 갈라지는 지점에 있었던 나루. 서평택으로 건너가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소청나루’라고 했다.

• 건곤乾坤 : 궁2리의 자연마을. 바닷물이 마을을 휘감아 돌아 ‘노적도露積島’, 궁방전이 많아 ‘건궁리’라고 했던
     것이 ‘건군이’ 또는 ‘건곤乾坤’이 됐다.

• 복음촌福音村 : 궁3리의 자연마을. 한국전쟁 뒤 월남한 피난민들이 조성한 마을이다. 주민의 대부분이 기독교인
    이어서 하나님의 복음으로 사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지었다. 고덕국제신도시 건설로 폐동될 예정이다.

• 중촌中村 : 1970년대에 조성된 마을. 가운데에 위치해 유래됐다.



좌교리坐橋里


조선시대 진위현 고두면. 1914년 좌교리·옹정리瓮井里·동청리 일부를 병합해 좌교리라 했다.
  대부분의 마을이 고덕국제신도시 건설로 폐동될 예정이다.



• 좌교坐橋 : 좌교1리의 마을. ‘원좌교’, ‘좌월’, ‘앉은다리’라고도 한다. 마을 앞에 서정천을 건너다니는 앉은다리坐橋
     있어 유래됐다.

• 옹정瓮井 : 좌교2리의 마을. 우물에 항아리를 묻고 물을 길어 먹어서 유래됐다. ‘독우물’, ‘도구머리’라고도
     부른다.

• 좌신기坐新基 : 좌교3리의 마을. 1922년 임술년 대홍수로 해창리 염촌 마을 사람들이 이주해 새로 터를 잡고
     마을을 형성하면서 ‘좌교 새터’라 했다.

• 중앙동中央洞 : 좌교4리의 마을. 본래 주막거리였는데 고덕면사무소와 행정기관이 밀집해 ‘면실’ 또는 ‘중앙동’이라
     했다.

• 바람산 : 옹정 뒤에 있는 산. 해발 38미터이며 ‘다리미산’이라고도 한다.



해창리海倉里


조선시대 진위현 고두면과 오타면(장) 지역. 1914년 방시내·마분·동청리 일부와 수원군 오타면 방시내·해창리 등을
  병합해 해창리라 했다.



• 염촌廉村 : 해창1리의 마을. 염씨가 살던 마을로 ‘염소말’이라고도 한다.

• 마분馬墳 : 해창2리 마을. 마정승의 묘가 있었다고 해서 ‘능말’ 또는 ‘마분’이라고 했다.

• 원해창 : 해창3리. 조선시대 진위현의 해창海倉이 있던 마을이다.

• 창말 : 원해창 북쪽 마을. 조선시대 진위현 해창이 있던 곳이다.

• 신촌新村 : 해창4리의 마을. 일제 말 원해창에서 분동해 ‘새터’, ‘신촌’이라고 했다.

• 방시천芳是川 : 해창5리. 방시내 주변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 대창동大昌洞 : 해창6리.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조성한 마을로 ‘고척골’이라고도 불렀다.



당현리堂峴里


고려시대에는 종덕장이었고 1914년 막금을 통합해 당현리라 했다.



• 당현堂峴 : 당현1리의 마을. ‘당고개’ 또는 ‘당아래’라고 부른다. 청룡말로 넘어가는 고개가 마을제당을
     넘어간다고 해서 ‘당재’ 또는 ‘당현’이라고 했다.

• 당아래 : 당현리 원당현의 자연지명. ‘당미’ 또는 ‘당밑’이라고도 한다.

• 늠말 : 당현2리의 자연지명. 덕원군 이서의 묘가 있었다.

• 청룡말 : 청룡사라는 사찰이 있는 곳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 내촌 : 당현3리의 마을. 안쪽에 위치해 ‘안말’이라고 했다.

• 막금 : 당현4리의 자연지명. 상막금과 하막금으로 나뉜다. 의령 남씨의 동족마을이다.

• 당산 : 당현1리 동북쪽에 위치한 산. 당현리의 마을제당이 있어 유래됐다.



동고리東古里


조선시대 진위현 고두면 지역. 근대 전후에는 이포나루(아래소청나루)가 있고 마을 앞으로 안성천이 휘감아 돌아
  됭(둥)구리라고 불렀던 것을 동고리로 표기했다.



• 정자동 : 동고1리의 자연지명. 마을 앞에 큰 홰나무 정자가 있어 유래됐다.

• 수어창리 : 동고2리 서남쪽 윗뜸에 있었던 옛 마을. 조선후기 5군영의 하나였던 수어청의 둔전이 있어 유래됐다.

• 신환포리 : 동고2리 아래뜸에 있었던 옛 포구 이름.

• 구창리 : 동고2리 중뜸에 있었던 옛 마을. 수어청의 둔전에서 거둬들인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 신창말 : 동고2리 윗뜸에 있었던 자연지명. 나중에 지어진 수어청 둔전의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

• 소청말 : 조선시대 이포나루가 있었던 곳. 일제강점 초기에는 평택에서 안중방면으로 건너가던 아래소청나루가
     있었다.

• 궁틀 : 정자동 38번국도 건너편에 있는 들판. 조선시대 궁방전이 있었다.



동청리東淸里


조선시대 양성현 율북면. 진위천변에 동청포라는 나루가 발달했던 포구마을이다.



• 동쳉이 : 원동청의 사투리로 ‘가래동쳉’이라고도 한다.

• 가산(동) : 동청1리의 마을 이름. 본래 진위천 변에 마을이 형성돼 ‘가매’ 또는 ‘가뫼’라고 불렸던 것이 한자로
     ‘가산佳山’이 됐다.

• 개미 : 가산佳山의 자연지명. 가뫼가 음이 변해 유래됐다.

• 구동안 : 동청리와 좌교리 사이의 들판에 형성된 마을. ‘동안’이라고도 부른다.

• 뱃터 : 원동청 마을 동쪽에 있는 지명. 옛 동청포가 있던 자리다.

• 동연교 : 고덕면 동청리와 청북면 어연리 사이에 놓인 다리. 본래 동청포에 건설돼 동청교라고 했던 것을 1957년
     콘크리트 다리로 다시 건설하면서 동연교로 바뀌었다.



두릉리杜陵里


조선시대 수원부 종덕면 지역. 1914년 두릉리와 계루지를 통합해 두릉리라고 했다.



• 두릉 : 두릉1리의 마을. 마을 앞에 큰 두렁(릉)이 있어 ‘두렁이’, ‘두릉이’라고 했다.

• 계루지桂樓地 : 두릉2리의 마을. 큰 계수나무 정자가 있어 유래됐다고도 하고 냇물이 흐르는 황무지가 있어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 종덕장 : 고려시대에 두릉리·동청리 일대를 관장하던 행정구역 명칭.

• 당산 : 계루지 북쪽에 있는 산. 청북으로 가는 지방도가 지나고 계루지 마을의 당목인 150년이 넘는 음나무 아홉
     그루가 서 있다.

• 민세 안재홍 고택 : 계루지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민세 안재홍의 옛집.



문곡리文谷里


조선시대 수원군 종덕면 지역. 본래는 ‘문곡’, ‘황조곡’, ‘신기’ 세 마을이 있었다가 1914년에 문곡리로 통합됐다.
  1961년 피난민들이 개척단들을 간척하면서 신흥동이 형성됐다.



• 황새울 : 문곡1리의 자연지명. 진위천이 가깝고 바닷물이 유입되고 황새도 날아들어서 유래됐다. ‘황조곡’이라고도
     한다.

• 원문곡 : 문곡2리의 마을. ‘민굿’이라는 자연지명이 한자화 하면서 유래됐다. 본래 바닷물이 들어오는 낮은
    곶이어서 ‘민곶’이었던 것이 ‘민굿’이 됐다.

• 양지편 : 문곡3리의 자연마을. 양지바른 곳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이다.

• 구렁머리 : 원문곡의 동쪽에 자리 잡은 자연마을. 마을을 둘러싼 긴 능선이 아홉 마리 용처럼 생겼고 원문곡 마을이
     머리에 해당해 유래됐다.

• 새터 : 150여 년 전 새로 생긴 마을. ‘문신기’, ‘개미새터’라고도 한다.

• 신흥동 : 문곡4리의 마을. 1961년 월남한 피난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개간사업을 하면서 새로 조성된 마을이다.

• 개척단들 : 새터들의 다른 이름. 1961년 월남한 피난민들이나 빈농들을 모아 갯벌을 간척하면서 형성된 들판이다.



방축리防築里


조선시대 수원군 오타면 지역. 1914년 진위군 고두면 효학리·오타면 방축리·효학리·삽교리·울성리·성남면 소시동
  각 일부가 통합되면서 방축리라 했다.



• 방축 : 방축2리의 마을. 마을 앞에 봄에 물을 가둬두던 논방죽이 있어 유래됐다. ‘방죽말’, ‘방죽안’, ‘원방축’이라고도
     한다.

• 효학동 : 방축1리의 마을름. 예부터 효를 숭상하고 가르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딸들에게도 효
     가르치기에 게으르지 않다고 해 ‘새악뜰’이라고도 한다.

• 소시동蘇侍洞 : 고려시대 소씨 마을. 시랑侍郞 벼슬을 하던 사람이 살았다고 해 ‘소시랑골’ 또는 ‘소시동’이라
    하게 됐다.

• 활딱지 : 태평아파트 앞 38번국도 좌우에 있었던 자연마을. 7∼8호쯤 있었지만 수해와 염해가 잦아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 때 근처에 있는 방축3리 유신동으로 집단 이주하면서 폐동됐다. 활터가 있었다고 해 유래됐다.

• 유신동 : 방축3리의 마을. 한국전쟁 후 조성된 피난민촌이 1970년대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유신동으로 했다.

• 지성동 : 방축4리의 마을.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조성된 마을이다.

• 서천사 : 본래 수덕암으로 봉미산 기슭에 있는 해동종 사찰이다.

• 율(유두)우물 : 서천사 남쪽에 있는 우물. 밤나무 우물이라는 뜻에서 유래됐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절에서는
    부처님의 젖이라는 의미라 한다.



여염리余染里


조선시대에는 진위현 고두면 지역. 1914년 성두(성머리)를 병합해 진위군 고덕면 여염리로 편제됐다.
여염이라는 지명은 ‘여씨가 이룬 마을’이라는 설과 ‘일반인(평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건설로 2013년 폐동됐다.



• 성두城頭 : 여염1리의 자연마을. 마을 주위로 방축리 성터가 둘러싸여 있는데 성의 머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해
     유래됐다. ‘성머리’라고도 부른다.

• 임주任珠 : 여염2리의 마을. 마을 뒷산의 형세가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상이라고 해 유래됐다는 설과, 옛날에
     임금님이 지나다가 하루 묵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 아사리벌 : 여염3리의 마을. 토지가 척박하고 생활조건이 나빠 유래됐는데 한국전쟁 뒤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마을규모가 커졌다.

• 용우물 : 여염2리 임주 마을에 있는 공동우물. 이괄의 난 때 발이 다 자라지 않은 용이 나와 하늘로 승천했다는
    설화가 전한다.



율포리栗浦里


조선시대에는 양성현 소고니면과 진위현 고두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소고니면 율포리를 통합해 율포리라 했다.



• 방죽말 : 율포1리의 마을. 예부터 마을에 방죽이 있어 유래됐다. ‘동촌’이라고도 한다.

• 율포栗浦 : 근대 이전만 해도 밤나무가 무성한데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포구가 발달해 유래됐다. ‘중촌’, ‘방개울’
    이라고도 한다.

• 이화동梨花洞 : 율포3리의 마을. 마을 주변에 배 과수원이 많아 배꽃이 만발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이월동’이라고도 한다.

• 구방죽 : 방죽말에서 가장 먼저 쌓은 저수지.

• 양성말 : 밤개울의 자연마을. 조선시대에 양성현 소고니면에 속했다.

• 아홉거리 : 밤개울 뒤 산등성이의 거리. ‘아옥거리’라고도 했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