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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양방씨 충효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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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방씨 충효정문溫陽方氏 忠孝旌門



소 재 지 : 팽성읍 원정1길 26-4



•현황 :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선봉으로 노량해전에서 분전 끝에 전사한 충신 방덕룡과 효자로 이름 높은 그의 손자 방일찬, 그의 후손 방이흠, 방시중 등 4명의 뛰어난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1칸 크기에 지붕은 한식의 골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으로 옆면은 방풍널을 달고 있다. 정면에는 홍살을 설치했고 측면과 배면은 벽을 쌓았다. 원형 초석 위에 목조원형기둥으로 겹처마 형식의 건축이다. 내부에 현판과 ‘방씨충효려方氏忠孝閭’라는 표석을 1859년에 세웠다.





•행적 : 방덕룡方德龍(1561~1598)은 병사兵使 방호의方好義의 손자로 평택현의 북촌北村에서 태어나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 낙안군수樂安郡守로 있었고 이순신 통제사制使가 그를 선봉장先鋒將으로 하여 1598년 노량露梁해전에서 왜선을 크게 격파하고 대승의 전과를 올렸다. 전투 중에 38세로 최후를 마친 사실이 알려져 형조참의로 증직됐다. 숙종 때 충신 정표가 하사됐다.





•행적 : 방일찬方日贊은 방덕룡의 손자로 그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마다 부모의 무덤에 배례拜禮하기를 팔십이 돼도 그치지 않았다. 이 일이 임금께 알려져 정려旌閭했다.





•행적 : 방세현世顯은 방일찬의 아들로 어머니의 병에 손가락을 잘라 효성을 다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방덕룡의 충절이 이미 저와 같았으니 방일찬 부자의 지극한 효성이 또한 이러한 것을 보면 그것이 모두 전수된 바가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행적 : 방이흠方以欽은 아버지가 병환이라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입에 흘렸더니 소생했다. 이 일이 임금께 알려져 정려했다.





•행적 : 방시중方時中의 행적이 조정에 알려져 1853년(철종 4)에 동몽교관 조봉대부로 증직되고 1854년(철종 5)에 효자 정문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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