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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지명유래
■ 평택시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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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지명유래


평택시 지명유래


근대이전 평택지역은 안성천과 진위천을 경계로 행정구역이 구분됐다. 안성천 북동쪽에는 진위현이 있었다. 5세기 이전 평택지역은 백제의 지배를 받았다. 백제 지배기에 진위현은 연달부곡·금산·송촌활달로 불렀다. 5세기 이후 고구려가 남하하면서 부산釜山으로 지명을 개편했으며, 신라 경덕왕(757) 때 진위현振威縣으로 고쳐 수주의 영현으로 삼았다. 조선 건국 후에는 충청도에 속했다가 1398년(태조 7) 경기도로 옮겼다. 세종 15년에는 영신현과 청호역, 부산현과 영신현의 일부를 통합하면서 안성천 북쪽과 진위천 서쪽 지역을 지배하는 고을이 됐다. 1895년 갑오개혁 뒤에는 진위군으로 고쳤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충청도 평택군과 서평택 일대의 수원군을 통합해 진위군이 됐다. 1938년 군郡의 명칭이 평택군으로 고쳐지면서 진위는 대표지명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평택현은 백제 초기에는 아술현(아산시)에 속했다. 나중에 하팔현으로 고쳤으며, 고려 초 평택현이 돼 탕정군의 영현이 됐다. 1505년(연산군 11) 경기도로 옮겼다가 중종 원년에 다시 복구했다. 1596년 전란의 피해가 극심해 고을을 폐하고 직산현에 붙였다가 1610년(광해군 2) 백성들의 간청에 따라 다시 복구하고 읍호를 팽성현이라고 했다. 1895년 평택군으로 고쳤고, 1896년 직산군 경양면을 통합해 오늘날과 같은 영역이 됐다. 1914년 진위군에 통합돼 부용면과 서면으로 분리됐고, 1934년 두 면이 통합되면서 팽성면으로 고쳤으며, 1979년 팽성읍으로 승격됐다.
평택시는 고려시대에 진위현과 평택현을 비롯해 동삭동 일대의 영신현, 안중읍 일대의 용성현, 현덕면 일대의 광덕현, 서팽성 일대의 경양현, 포승읍과 청북면 일대의 포내미부곡·육내미부곡·감미부곡 등 6개의 부곡部曲, 포승읍의 신영장, 고덕면의 종덕장, 고덕면과 오성면 일대의 오타장, 오산시로 편입된 청호역 등 16개의 행정구역이 있었다. 조선시대 중앙집권이 강화되면서 향·소·부곡과 장·처 등 특수행정구역이 일반 행정구역에 통합되고 작은 고을들이 서로 통합되면서 평택지역은 진위현·평택현과 수원부·양성현·직산현의 월경지였던 서평택지역으로 개편됐다. 갑오개혁(1895년 2차개혁) 때에는 진위군·평택군·수원군으로 통폐합됐으며, 1914년 3개 군이 진위군으로 통합됐고, 1938년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른다.
1905년 1월 1일 경부선철도 개통으로 설치된 평택역과 서정리역 주변이 도시화되면서 평택리가 신설됐다. 평택리는 일본인 이민자들의 정착과 교통·상업의 발달로 급격하게 성장해 1931년 평택면, 1938년 평택읍으로 성장했고 1986년 평택시로 승격됐다. 서정리역이 설치된 송탄면 일대는 1952년 이후 K-55 미공군기지가 주둔하면서 신장동을 중심 으로 기지촌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했다. 1963년 읍으로 승격했고, 1981년 송탄시로 승격됐다.
서평택지역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오성면 안중리 일대가 중심지로 발전했다. 1986년 안중출장소를 설치했고, 1989년 안중면을 독립시켰으며, 1990년대 전후 평택항과 해군제 2함대사령부 주둔, 포승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한 공업화의 배후도시로 성장함에 따라 읍으로 승격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당시 진위군 북면이었던 진위면 일대는 1938년 진위 군이 평택군으로 바뀌자 1948년 기존의 북면을 진위면으로 바꾸었다. 이와 같은 발전에따라 평택군·송탄시·평택시로 분리됐던 평택지역은 1995년 시군통합정책에 따라 3개 시·군을 통합해 평택시라 했다. 2013년 현재 평택시는 3개 읍, 6개 면, 13개 행정동 등 22개 읍·면·동을 관할하고 있다.












+ 팽성읍彭城邑

+ 안중읍安仲邑

+ 포승읍浦升邑

+ 진위면振威面

+ 서탄면西炭面

+ 고덕면古德面

+ 오성면梧城面

+ 청북면靑北面

+ 현덕면玄德面

+ 동洞지역(1)

+ 동洞지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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