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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지명유래 > 동洞지역(1)
■ 동洞지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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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동中央洞


조선시대 진위현 송장면과 양성현 소고니면 지역. 1914년 지장리·서정리·갈평리·대속동(대추동)을 통합해 서정리라 했다.



• 서두물 : 서정리초등학교 후문 일대의 자연마을. 동령마을 서쪽에 좋은 우물이 있어 ‘서우물’, ‘섯우물’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됐다.

• 대속동 : 서정리역과 서정시장 일대의 자연마을로 ‘대추동’이라고도 했다.

• 신선 : 1914년 이전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신리’ 또는 ‘신설’이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신선’이라 표기했다.

• 신서新西 : 서정리역 주변이 도시화되면서 형성된 마을. 신선마을 서쪽에 해당돼 유래됐다.

• 갈평葛坪 : 옛날에는 서정천을 따라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올라오고 간석지에 갈대가 많이 자라서 유래됐다.

• 번성蕃城 : 서정동의 자연마을. 서정천 일대 하천부지를 간척하며 형성된 마을로 번성하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 서정리역 :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설치된 기차역.

• 서정시장 : 서정리역이 설치되면서 역 주변에 형성된 전통시장. 처음에는 5일장이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상설시장이 됐다.



이충동二忠洞


조선시대 진위현 송장면 지역. 1914년 이충동·신리·대동령리·석정동을 통합해 송탄면 이충리라 했다. 이충이라는 지명은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선산과 장토가 있었고 어릴 적 살았던 유허가 있고, 병자호란 삼학사 가운데 한 명인 추담 오달제의 옛 집이 있어 두 명의 충신을 기리는 뜻에서 유래됐다.



• 동령東嶺 : 고려시대 송장부곡, 조선시대 송장면의 중심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성재, 성물백이와 같은 지명이 있고
     400여 년 전통의 정제와 줄다리기가 남아있다.

• 이충二忠 : 이충동 부영아파트 일대에 있었던 자연마을. 조광조의 유허가 있었다.

• 석정石井 : 이충동의 자연마을로 ‘돌우물’이라고 부른다. 돌 틈에서 물이 나오는 석간수가 있었다.

• 신리新里 : ‘새터말’이라고도 한다. 이충고등학교 일대에 있었지만 택지개발로 폐동되다시피 했다.

• 광말 : 반지산 남쪽에 있는 마을. 택지 및 상가부지 개발로 폐동됐다.

• 부락산 : 송탄지역의 주산. 근대 전후 부락산負樂山·불악산佛樂山·조락산鳥落山·요악산·불학산 등으로 부르다가
     1994년 부락산으로 명칭을 정리했다. 남쪽에 국제대학교·은혜중고등학교·이충레포츠센터·부락사회복지관·
     평택시북부복지타운·부락산 둘레길 등이 조성됐다.

• 흔치고개 : 삼남대로 대백치(큰 흰치고개)에서 이충동 동령마을로 내려오는 고개로 ‘작은 흰치고개’라 하다가
     음이 변해 ‘흔치’라 부른다.

• 서낭당(고개) : 흔치휴게소를 지나 소골로 내려가는 고갯마루 서낭당.



장당동獐堂洞


조선시대 양성현 소고니면 지역. 1914년 광천리와 장당리를 통합해 장당리(동)라 했다. 장당이라는 지명은 ‘노루댕이’에서 왔다.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잘록하게 들어간 곳을 ‘노루목’ 또는 ‘노루댕이’라 하는데 이것을 노루 장을 써서 ‘장당獐堂’이라 했다. 고덕국제신도시 및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건설로 자연마을은 폐동됐다.



• 원장당元獐堂 : ‘노루댕이’, ‘노루쟁이’라고도 부른다.

• 방아다리 : 원장당과 효명고등학교 사이 마을로 물레방아가 있어 유래한다.

• 광천廣川 : ‘너부내’라고도 부른다. 마을 앞으로 서정천이 흐르고 있어 넓은 내라고 했던 것을 음이 변하면서
     너부내라 부르게 됐다. 2013년 고덕국제신도시 개발로 폐동됐다.

• 두집매 : 노루댕이의 다른 이름. 광주 김씨 두 집이 처음 이사 와서 정착해 유래했다.

• 광귀 : ‘도툼안골’이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외집매였는데 1960년대 서울지역 이주민들의 귀농정착사업이 시작
     되면서 ‘광귀’라고 부르게 됐다. 귀농민들은 정착에 실패해 대부분 떠났다.

• 장좌울 : 광천 옆에 형성된 마을. 중국 화교출신의 도씨네 한 집뿐이다가 1960년대 전라도 이주민들이 옮겨오면서
     마을이 커졌다.

• 감나무골 : 감나무가 많이 자라는 데서 유래했다.

• 한뉴목장 : 1967년 한국과 뉴질랜드가 합작하며 만든 목장으로 나중에 매일유업시범목장이 됐다가 2013년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건설지역에 포함됐다.



가재동佳材洞


행정동인 송탄동의 법정동 명칭. 조선후기 진위군 송장면·여방면·양성현 소고미면에 속했다가 1914년 가재동·시동·방혜동·중리·사당재리·막곡리를 통합해 가재리(동)라 했다.



• 가재울 : 가재리의 자연지명. ‘가좌울’이라고도 한다. 산의 모양이 가재와 같다는 설과, 냇가에 가재가 많이 잡혔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 상가재 : 가재리의 윗마을. 재개발사업으로 2013년 현재 폐동을 앞두고 있다.

• 하가재 : 가재리의 아랫마을. 재개발사업으로 2013년 현재 폐동을 앞두고 있다.

• 막곡幕谷 : 가재동의 자연마을. 군막軍幕이 있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송탄초등학교와 송탄동사무소가 있다.

• 중리中里 : 막곡과 방혜동 사이에 있어 ‘가운데말’이라고 한 것을 한자로 ‘중리’라 했다.

• 방혜동芳惠洞 : 본래 방효리芳孝里·뱅여울·방혜울이었는데 옛날에 마을을 지나가던 스님이 천마산의 산세가 꽃과
     같아 복을 받을 것이라 해 꽃방芳 자를 써서 방혜동이라 했다는 전설이 있다.

• 시동枾洞 : ‘감나무골’이라고도 한다. 송탄공단 뒤쪽에 있다가 폐동된 마을로 감나무가 많았다.

• 사당리祠堂里 : 사당재리라고도 한다. 가재감리교회 아래에 있었으며 한국전쟁 뒤 폐동됐다.



도일동道日洞


조선시대 진위군 여방면 지역. 1914년 여방면의 도일리·내리·상리·양성현 원당면 의곡·여동·신촌·심곡을 통합해 도일리(동)라 했다. 도일이라는 지명은 ‘원도일’에서 왔다.



• 원도일 : 양성현의 경계여서 도일, 되일이라고 하던 것을 도일道日로 표기했다.

• 상리上里 : 진위현 여방면 지역으로 가장 위쪽에 위치해 유래됐다.

• 내리內里 : 진위현 여방면으로 안쪽에 형성돼 유래됐다.

• 하리下里 : 양성현 원당면 지역으로 아래쪽의 마을이라고 해서 유래됐다.

• 여좌울 : 조선후기 상리 도일천을 경계로 좌측(덕암산 쪽)의 마을에 대한 통칭.

• 여우동 : 조선후기 상리 도일천을 경계로 우측(팔룡산 쪽)에 대한 통칭.

• 사창이 : 도일동 상리의 자연마을. 조선시대 진위현의 사창이 있었다.

• 뱃터 : 조선시대 사창이 있을 때 도일천에 있었던 나루터. 뱃줄을 매어 두었다는 느티나무와 향나무 비보림이 있다.

• 산막골 : 상리의 자연지명으로 산막이 있었다.

• 요골 : 상리의 자연지명으로 그릇을 굽던 가마가 있었다.

• 배낭골 : 상리의 자연마을. 배나무골이 변해 유래됐으며 이성부 충절정문이 있다.

• 황성말 : 황새울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큰 길 가에 위치했다.

• 샛골 : 상리에 자연마을로 원주 원씨가 처음 자리 잡은 마을.

• 안골 : 상리 가운데서도 덕암산의 안쪽에 형성돼 유래. 양세충효정문이 있다.

• 정골 : 안골 위쪽의 골짜기며 1728년 이인좌의 난에 호응했던 원만주가 용광로를 설치하고 농기구와 병장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 빈터 : 안골에 있는 골짜기. 임진왜란 때 상리의 부인들이 피신했던 곳이다.

• 빈터고개 : 빈터를 지나 은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정상부에 서낭당이 있다.

• 가농골 : 황성말 서쪽의 자연마을.

• 응골 : 도일천 건너편의 자연마을.

• 갈월 : 도일천 건너편의 자연마을로 약천사가 있다.

• 양성말 : 도일천 건너편의 자연마을로 조선후기 양성현 지역이었다.

• 여의실 : 하리의 자연마을로 양성현 원당면 여동과 의곡리가 통합하면서 유래됐고, 큰여의실과 작은여의실로
     구분된다.

• 대마거리 : 내리의 자연마을. 말을 기다리던 곳에서 유래됐다.

• 운터말 : 내리의 자연마을.

• 울음밭 : 원균 장군의 집터가 있던 곳으로 장군의 유품을 물고 천리를 달려온 애마가 유품을 내려놓고 울음을 운 뒤
     죽었다는 곳.

• 갓골 : 원릉군 원균의 묘가 있는 마을.

• 능골 : 원릉군 원균의 묘 뒤쪽 마을. 조선 전기의 화가 최경의 묘가 있다.

• 암말 : 내리에서 덕암산 안쪽에 형성된 마을. 전원주택단지가 조성됐다.

• 왕뒤 : 암말 서쪽의 자연지명. 원릉군 원균의 선무1등교서를 가지고 왕의 사신이 넘어온 길에서 유래됐다.

• 덕암산 : 도일동과 진위면 은산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 예로부터 ‘석씨 천 년, 소씨 천년, 원씨 천년’이라는 말이
     전해오며 ‘아흔 아홉 골짜기가 있고 아흔 아홉 마을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흰치고개 : 삼남대로 평택구간의 가장 험한 구간. 산봉우리가 희게 보여 대백치라고도 불렀다.



모곡동茅谷洞


조선시대 진위현 여방면 지역. 전주 이씨 수도군파 동족마을로 띄풀이 많이 자라서 띄우지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모곡茅谷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마을 뒤에 일본군 정찰기 비행장이 있었다.



• 웃말, 중간말, 아랫말 : 모곡동의 자연마을

• 새마답 : 마을 뒤 송탄지방산업단지가 조성된 산. 소꼴을 베기 좋은 곳이었다.

• 매봉재 : 모곡동 뒷산. 정상부가 평평한 잔디밭이어서 마을 사람들이 축구하며 놀기도 했다 한다.

• 옷박골 : 매봉재 봉우리 계곡의 후미진 골짜기.

• 조산모퉁이 : 마을 안쪽 향나무가 있는 모퉁이.

• 운암들 : 마을 앞 도일천 건너편의 들판.

• 뱅여들 : 모곡동과 뱅여울 사이의 들판.



장안동長安洞


조선시대 진위군 송장면 장안리. 1914년 진위군 송탄면 장안리가 됐다. 장안이라는 지명은 마을에 장이 섰기 때문에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 역마바위 : 부락산 중봉에 있는 바위. 애기장수 전설이 전해온다.

• 빈대바위 : 부락산 대수골에 있는 바위.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리는 곳이다.



칠괴동七槐洞


조선시대 진위군 여방면 지역. 1914년 송탄면 칠괴정리라고 했던 것을 나중에 칠괴동이라고 했다. 마을 앞 우물가에 고목 일곱 그루가 있어 ‘칠괴정’ 또는 ‘칠구쟁이’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 용산절 : 서북쪽에 있는 지명으로 옛 절터.

• 장구탱이 : 원칠원으로 넘어 가는 옛길.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건설로 없어졌다.

• 장자골 : 칠괴동에서 원칠원으로 올라가는 계곡으로 진주 소씨의 묘가 있다.

• 원고개 : 모산골을 거쳐 안성방면으로 넘어 가던 고개.

• 상나무배미·노랑개들·돌밋들·시밋들 : 마을 앞 들판.

•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 1979년 동아자동차가 설립됐다가 1986년 쌍용자동차에 매각됐다.



칠원동七院洞


조선시대 제6대로(삼남대로)의 갈원葛院이 있던 마을. 조선후기 진위군 여방면 칠원七院으로 바뀌었다. 1914년 칠원·수촌·신리를 통합해 칠원리라고 했으며 ‘갈왕골’이라고도 한다.



• 원칠원 : 칠원1동의 마을이름.

• 윗거리·아랫거리 : 칠원1동의 자연마을.

• 신촌 : 칠원2동의 자연지명으로 ‘새말’이라고 한다.

• 수촌水村 : 칠원3동으로 통복천의 지류에 물레방아를 설치해 ‘물방아거리마을’이라고도 부른다.

• 쇠물뿌리 : 칠원3동의 자연마을. 마을의 지세가 와우형臥牛形인데 소의 뿔에 해당되는 곳에 마을이 형성됐다.

• 옥관자정 : 칠원1동 갈원에 있는 우물. 본래 ‘옥수정’이었는데 조선시대 임금이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물맛을 보고
     감탄해 옥관자를 내리면서 유래됐다.

• 소유우물 : 쇠물뿌리 마을의 공동우물. 소의 젖에 해당되는 곳에 우물이 있다.

• 이산매산 : 칠원2동의 뒷산. 새말에 거주하던 명창 이동백이 산을 오르며 노래를 짓고 산위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산지봉 : 칠원1동 뒷산. 산신당이 있어 음력 10월에 산신제를 지냈다.

• 옥녀봉 : 옛 도원동사무소 뒷산. 이괄의 절터가 있다.

• 쇠마름방죽 : 칠원2동 서쪽 입구 주말촌 식당 옆 방죽. 옛날 마을에 사는 큰 부자가 쇠말뚝을 박아 만들었다고 한다.

• 장자울 : 칠원2동 서쪽 구릉지대. 옛날 큰 부자가 기와집을 짓고 살던 곳이다.

• 고분야 : 칠원2동 새말 앞의 들판.

• 개구리봉 : 칠원2동 앞의 작은 봉우리. 개구리봉 꼭대기는 장사추와형의 명당이라고 알려졌다.

• 건넌들·보아지들·가내들 : 칠원3동 주변 들판.

• 수촌마을 용신제 : 칠원 3동 수촌마을에서 정월에 통복천에 지내는 용신제.



서정동西井洞


행정동으로 서정동을 말한다. 조선시대 진위현 탄현면이었고, 남쪽 일부는 양성현 소고니면이었다. 1981년 송탄시가 승격되는 과정에서 복창동·점촌·사거리·원적봉·지장동 을 서정동 관할로 두면서 유래됐다. 서정동의 유래는 서두물이다. 서두물(서정동)은 중앙동의 자연마을이다.



• 점촌店村 : 우리말로 ‘점말’이다. 1920년대 초 황금석이라는 사람이 옹기점을 운영하면서 유래됐다. 1980년대
     초까지도 옹기가마가 남아있었다.

• 지장동地莊洞 : 지장사地藏寺라는 절 아래에 형성된 사하촌에서 유래됐다.

• 복창동福昌洞 : K-55 미공군기지가 주둔하면서 청소용역을 맡은 복창공사福昌公社에 다니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고 해서 유래됐다.

• 신창동 : 1950년대 중반 사거리 아래에 형성된 마을. 황해도 피난민들이 집단 이주해 정착했다고 해서 ‘황해도촌’
     이라고도 한다.

• 절골 : 신창동 앞의 마을로 약수암藥水庵이라는 절이 있어 유래됐다.

• 사거리四巨里 : 신장동·적봉리·장등리·서정리로 통하는 네거리가 있어 유래했다.

• 원적봉原赤峰 : K-55 미공군기지가 주둔하고 마을이 폐동되면서 주민들이 집단 이주해 형성한 마을. 초기에는
     기지 정문이 있어 외지인들이 들어와 정착했다.



지산동芝山洞


조선후기 진위현 일탄면과 마산면 지역. 1914년 동막리·일탄면 우곡리牛谷里·좌동·지산리 일부를 통합해 송탄면 지산리라고 했다. 지산芝山이라는 지명은 땅이 메말라서 ‘건지뫼’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 좌동佐洞 : 지산동의 자연마을. ‘좌월’, ‘좌울’이라고도 하며 숯고개 아래에 형성된 마을이다.

• 탄현炭峴 : 점촌에서 송북시장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름. 신장동·적봉리 일대의 숯이 유통되는 통로여서 ‘숯고개’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탄현炭峴’이라고 했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에 지현芝峴(쑥고개)주막이라는 지명이
     있는것으로 보아 1900년 전후에는 ‘쑥고개’로도 불렸던 것같다. 쑥고개는 숯고개의 변음으로 1970년 이전까지
     송탄을 지칭하는 지명으로 사용되다가 ‘지명 바로 부르기 운동*’으로 소멸됐다.



송북동松北洞


1981년 송탄시로 승격되면서 형성된 행정동이다. 송탄지역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 유래됐고 송천·건지미·신흥·우곡·오좌동·오리골·동막을 관할하고 있다.



• 송천松泉 : 1970년경 탄현炭峴에서 분리되면서 정해진 명칭. 지산천 옆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 건지미乾芝 : 조선후기 건지산리로 통상 윗건지미만을 의미. 잔디의 떼가 마를 정도로 건조한 지역이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 양달말 : 건지미의 동북쪽 마을. 햇볕이 잘 드는 곳 마을이 형성돼 유래했다.

• 응달말 : 건지미 서남쪽 지명. 응달진 곳이어서 유래했다.

• 북어울 : 양달말의 뒷산의 마을. 큰북어울과 작은북어울이 있다. 명태를 말려 북어를 만든 일이 있다하여 유래했다.

• 신흥新興 : 아래건지미라고도 한다.

• 우곡牛谷 : 고려 말부터 진주 소씨가 집성촌을 이뤄 ‘소골’이라 부르다 한자로 ‘우곡牛谷’으로 쓰게 됐다.

• 양지편 : 우곡마을 농협창고 뒤쪽의 마을. 양지바른 곳에 마을이 있다.

• 가운데말 : 우곡의 중심마을. 마을회관 일대의 마을이다.

• 시루터 : 우곡마을 서쪽 등성이 너머 마을.

• 풀무골 : 우곡마을 뒤쪽 골짜기. 진주 소씨의 멸문지화에 관련된 풀무골 전설이 전해진다.

• 동막東幕 : 마을이 태봉산에 막혀 있어 유래됐다.

• 아랫뜸·동뜸·서뜸 : 동막의 자연마을.

• 염봉재 : 동막에서 진위면 마산리 수촌으로 넘어 가는 고개. 작은흰치고개라고도 한다.

• 백현원 : 조선시대 염봉재 중턱에 있었던 국영주막. 맹사성의 공당문답 고사가 전해진다

• 오좌동梧佐洞 : 법정동으로 독곡동에 속한 마을로 ‘오좌월’, ‘오좌울’이라고도 한다. 오동나무에 봉황이 앉는
     형국에서 유래됐다고 전한다.

• 동실봉 : 오좌동 뒷산 이름

• 모산 : 오좌동 서쪽 입구에 있는 봉우리. 조선 전기 용성군 최자반이 모정을 짓고 남산터 원정의 최수성 등 사림들과
     교유했던 곳이다.

• 오리곡五里谷 : 오릿골이라고도 한다. 독곡동의 자연마을로 단양 우씨들이 많이 거주한다.
     마을 앞에 큰 개천이 흐르고 오리가 많이 날아들어 유래됐다는 설과, 버드나무가 많아서 오류곡이라고 했던 것이
     음이 변했다는 설, 진위현 관아로부터 5리 거리에 위치했다는 설이 있다.



신장동新場洞


조선후기 탄현면 지역. 1914년 신장리와 제역동이 통합돼 송탄면 신장리가 됐다. 조선후기 장시場市가 있어 ‘신장新場’ 또는 ‘새장터’라고 불렀다.



• 구장터 : 신장1동의 자연마을. 진위현의 읍치邑治 봉남리에서 진위현 해창이 있던 고덕면 해창리로 나아가는
     육로교통과 진위천 수로교통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장시場市가 열렸던 마을이다. K-55 미공군기지 비행기
     이착륙에 따른 소음으로 기지지역으로 수용돼 2010년 송북동 동안마을로 집단 이주했다.

• 새장터 거리 : 옛 신장리의 우리말 이름.

• 제역동除役洞 : ‘제골’, ‘지골’이라고도 부른다. 신사무옥新巳誣獄 때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죽은 기묘명현
    최수성崔壽城을 영의정으로 추증하면서 무덤 주변 10리 안의 주민들에게 묘역의 정화에 힘쓰라고 부역을 면제해주
    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1952년 K-55 미공군기지가 주둔하면서 기지촌의 중심이 됐다. 현재 영천 관광호텔 일대다.

• 남산터南山터 : 신장1동의 자연마을. 남산 아래에 마을이 형성돼 남산터라 했다.

• 목천木川 : 지산천에 떠내려 오는 나무를 건져 땔감으로 사용했다 하여 ‘나무내’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목천’이라
     했다.

• 밀월동密月洞 : 1952년 K-55 미공군기지가 주둔한 뒤 형성된 마을. 수풀이 우거진 곳에 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아름답다고 해서 유래됐다.

• 송월동松月洞 : 1952년 K-55 미공군기지가 주둔한 뒤 형성된 마을. 소나무 숲 사이로 비치는 달이 아름답다고 해서
     유래됐다.



주석

*1972년 송탄JC 주관으로 “쑥고개가 아닙니다. 송탄이라 부르세요” 라는 구호를 앞세워 ‘지명 바로 부르기 운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