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13조창 하양창 > 유적과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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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13조창 하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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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치 : 팽성읍 노양1리 뱃터



고려시대 평택지역의 조창으로는 전국 13조창 중 하양창河陽倉이 있었다. 하양창은 팽성읍 노양1리 타이포(또는 편섭포)에 있었다. 조창이 설치된 것은 10세기 초 전국 12조창이 설치되면서다. 『고려사』에 하양창에 한척에 1000섬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 6척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양창에서는 주로 경기남부와 충청북부 일부지역의 세곡을 담당했다. 이곳의 세곡을 관리하고 운송하기 위해 외관록 20석을 받는 판관을 배속했고, 세곡의 징수와 관리 그리고 운송책임은 고을의 향리와 백성들로 구성된 뱃사공, 소공, 수수와 같은 조군漕軍들이 맡았다.34)
하양창의 중요성 때문에 노양리 일대를 경양현으로 승격시키고 조세운송과 염장관을 겸하게 했다. 하양창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삼남의 해운이 끊기면서 역할이 중단됐고 조선조에는 폐지됐다.



| 하양창이 설치되었던 팽성읍 노양1리 경양포(2002) |


주석

34) 평택시사편찬위원회, 『평택시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