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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위면 봉남리 진위향교 앞의 비석은
모두 18기로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
다. 보호각 안에는 관찰사를 기리는 비
가 2기, 현령을 기리는 비가 14기, 교
육 사업에 열정을 보인 업적을 기리는
비가 1기, 현령의 비로 생각되나 인위
적으로 마모시켜 판독이 불가능한 것
이 1기다.
선정비들은 모두 17세기 이후에 건립
됐다. 이 비석들 중 재임 중에 세워진비가 2기, 재위한 마지막 해에 세워진 비가 3기, 이임離任한 다음해에 세워진 비가 4기이며 나머지는 이임 후 2년 이후에 세워진 비석들이다.
주목되는 인물로는 이명달을 들 수 있다. 그는 진위현령을 지낸 후 1636년 용인현령이 됐고 1635년부터 3년 동안 안산군수를 지내면서 치적을 높였다. 그가 진위현령에서 이임한지 4년이나 지난 후에 선정비가 세워졌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서광두는 1868년 부평부사로 재직하던 중 표창으로 승진한 인물이다.
17기의 비석이 관찰사와 현령의 비석인데 반해 ‘정경부인능성구씨송덕비貞敬夫人綾城具氏頌德碑’는 영의정을 지내다 을사조약 이후 진위면 봉남리로 내려와 살았던 심순택의 부인 능성 구씨의 공덕을 기리고자 지역민들이 세운 비이다. 그녀는 낙향 후 흉년에 봉남리 일대의 빈민구제에 힘썼고 1912년 구씨학원을 열어 진위보통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아이들을 모아 교육을 실시했다. 구씨학원은 1920년대 금릉학원으로 이름을 바꿨고 능성 구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운영되다가 해방 후 진위중·고등학교로 계승됐다.
| 진위향교 앞 선정비군 |
[진위향교 앞 선정비군]
번호 | 비명(碑銘) | 건립연대 | 비고(재위연도) |
---|---|---|---|
1 | 縣令李侯夏龜淸德愛民善政碑 | 1740 | 1734~1739 |
2 | 縣令李侯光迪淸簡愛民善政碑 | 1752 | 1746~1749 |
3 | 縣令李公命達善政碑 | 1638 | 1633~1634 |
4 | 縣令李公恒演淸簡善政碑 | 1789 | 1785~1788 |
5 | 縣令徐侯光斗愛民善政碑 | 1873 | 1869~1872 |
6 | 縣令○○○愛民善政碑 | - | - |
7 | 觀察使朴公永輔淸簡不忘碑 | 1872(추정) | 1869~1873 |
8 | 縣令睦侯養錫永世不忘碑 | - | 1872~1875 |
9 | 縣令李侯騏新愛民善政碑 | 1863 | 1859~1864 |
10 | 縣令兪公是會愛民善政碑 | 1630 | 1626~1627 |
11 | 縣令朴侯齊寬愛民善政碑 | - | 1856~1859 |
12 | 縣令沈昶善政碑 | - | 1613~1614 |
13 | 縣令朴公炳淸簡善政碑 | - | 1627~1633 |
14 | 縣令金侯載舜永世不忘碑 | 1885 | 1883~1885 |
15 | 觀察使金公道善愛民善政碑 | 1837 | 1835~1837 |
16 | 貞敬夫人綾城具氏頌德碑 | 1895(추정) | - |
17 | 縣令李公瑋淸德愛民善政碑 | 1721 | 1719~1721 |
18 | 縣令黃裒淸簡愛民善政碑 | 1678(추정) | 1657~16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