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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동의 자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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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동의 자연마을은 점촌·지장·복창·신창·사거리·원적봉 등 6개 마을이다. 여기에 절골까지 포함하면 모두 7개 마을이다. 1914년 있었던 마을은 서탄면에 속했던 원적봉 뿐이다.


점 촌店村은 청북고가도로에서 옛 송탄소방서(현 서정동주민자치센터)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점촌은 천주교인들의 교우촌이었다. 점촌에 옹기점이 들어선 시기는 1920년대 초 황금석 씨가 옹기가마를 만들면서 형성됐다. 마을규모는 20여 호였다. 1990년대를 전후해 옹기산업이 쇠퇴하고 도시가 확장되면서 전통마을은 사라졌다.


지장동은 송탄출장소와 점촌 사이의 마을이었다. 고려시대 송탄출장소 부근에는 지장사라는 절과 사하촌이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불타자 조선 후기 본래 위치에서 300여 미터 아래에 절을 중건했고 사하촌도 함께 옮겨 마을이 형성됐다. 지장동도 1990년대 초 도시개발과 신흥주택단지 건설로 옛 마을의 흔적이 사라졌다.


신창동은 신장2동 밀월동과 사거리, 복창동 사이의 마을이다. 신창동은 황해도 피란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황해도촌’이라고도 불렀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군산피란민수용소에 정착했다가 1950년대 중반 송탄 황해도촌 언덕바지로 집단 이주했다. 그 곳에 1952년 피란민들에 의해 설립된 송탄신흥교회가 있다.


신창동과 인접한 사거리와 복창동은 전쟁 피란민과 미군부대에 취업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이주민들이 뒤섞여 형성한 마을이다. 사거리라는 지명은 1950년대 원적봉·신장동·적봉리·서정리 방향으로 갈라지는 네거리가 형성되면서 유래됐다.


복창동이라는 지명은 특이한 유래가 있다. 일설에는 ‘복이 날로 창성하라’는 뜻도 있다지만 근거가 없다. 미군기지에서 청소용역을 대행하는 ‘복창공사’라는 회사가 이곳에 있었고 그 회사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복창동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송탄지역에서 가장 낙후됐던 복창동은 1980∼90년대 도시개발로 주택이 개량되고 도로가 정비되면서 깨끗한 마을로 변모됐다.


원적봉은 사거리에서 미군기지 후문 방향으로 이어지는 언덕배기 마을이다. 조선 말기에는 진위군 적봉리와 신야리였다가 1914년 적봉리가 됐다. 원적봉은 본래 40여 호가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1952년 K-55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주민들 일부는 신장1동 구장터와 목천으로 이주하고 나머지는 마을 뒷산자락으로 이거하면서 마을은 폐동되다시피 했다. 미군기지에서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이 이거하면서 새로운 마을이 형성됐고, 토박이들이 거주하던 이주지로는 미군기지가 확장되면서 원주민 마을은 완전히 사라졌다.



신창동과 사거리 사이 언덕에 있는 송탄신흥교회

| 신창동과 사거리 사이 언덕에 있는 송탄신흥교회 |



사거리

| 사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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